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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Feb 03. 2023

뎅기열 정말 무섭네요

회복하기까지 꼬박 일주일, 아들의 고통스러웠던 시간


싱가포르에 18년째 살면서 간혹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엄청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뎅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아데스 모기 개체수가 많은 곳도 아니고, 뎅기열 발병 환자 수가 적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아데스 모기는 몸통과 다리, 머리에 흰색줄이 있으며, 뎅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뎅기열은 이 아데스 모기에 물린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생기는 병이다. 아데스 모기는 주로 화분 받침대, 식기건조대와 같은 소형용기의 고인 물에 산란하고 서식하므로, 용기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꽃병의 물은 자주 갈아주고, 물조리개와 같이 뚜껑이 없는 물건은 사용하지 않을 때 물이 고이지 않도록 꼭 뒤집어서 보관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만약 가정집에서 아데스 모기가 서식하거나 알을 낳을 수 있는 물웅덩이 등을 방치하다가 발견될 경우, 집주인에게 $200(2023년 환율로 약 19만 원, 단일 서식지 발견 시)에서 $300(약 28만 원, 복수 서식지 발견 시)의 벌금이 부과된다. 3차 이상 적발되면 최대 $5,000(약 465만 원)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출처: Singapore NEA) 싱가포르의 아파트는 정기적으로 유해충 방제서비스를 받는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매주 화요일마다 방제업체에서 철저히 방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뎅기열에 걸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며칠 전, 대학교 기숙사에 살던 아들이 학교 보건진료소에 있다고 전화가 왔다. 고열이 나고 두통이 심해서 혈액검사를 받았는데, 아직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뎅기열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은 진료소에 가기 이틀 전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단순한 두통이나 몸살로 생각하고 해열진통제만 복용했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열이 내리지 않고, 전날 밤에는 열이 39.4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검사 결과가 나오면 학교에 MC(Medical Certificate, 의사에게 받은 진단서)를 제출하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 정도로 아팠는데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연락하지 않았다는 아들의 말에 마음이 너무 짠했다. 


몇 시간 후 집에 들어선 아들은 입술이 바짝 마르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열이 많이 나고 입맛도 없어서 기숙사 밥은 거의 못 먹고 물만 마셨다고 했다. 나는 뭐라도 빨리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부드러운 음식으로는 계란찜이 제일 나을 것 같아서 뚝배기에 계란찜을 하고, 갓 지은 흰쌀밥과 조미김을 꺼내 간단하게 차려주었다. 아들은 엄마 밥은 그래도 조금 넘어간다며 몇 수저를 먹은 후, 보건진료소에서 받아 온 해열진통제 한 알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아들이 잠드는 걸 보고 나는 일하러 갈 준비를 했다. 아픈 아이를 두고 학교에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 저녁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들 방으로 가 보니, 아들은 고열과 함께 오한까지 들어서 덜덜 떨며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고열이 나니 아들에게 얇은 모포 하나만 덮어주고, 수면양말을 신겨주었다. 속이 너무 비면 안 좋을 것 같아서 수프를 얼른 끓여서 조금 먹인 후 해열진통제를 먹였다. 약을 먹어도 열은 38.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밤새 아들 방을 드나들며 열을 재고, 조금씩 물을 마시게 하며 밤을 새웠다. 혼자 침대에 앉아 뎅기열에 관해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뎅기열은 갑작스럽게 고열이 나서 며칠간 발열이 지속되고, 심한 두통과 근육통, 식욕부진이 생기며 온몸에 피부발진이 생긴다고 했다. 아들은 그 모든 증상을 겪고 있었다. 혹시라도 뎅기출혈열로 진행이 되어 아들의 상태가 더 나빠질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학교 보건진료소에서 받은 혈액검사 결과지를 살펴보시고, 백혈구 수치와 혈소판 수치가 정상보다 낮으니 한 번 더 피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으면 수혈을 해야 하지만 전날과 비슷한 수치면 더 지켜봐도 된다고 하셨다. 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아들에게 수액을 처방해 주셨다. 아들이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는 동안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수액을 다 맞으면 의사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애태우며 걱정하느라 온몸이 지쳤지만 앉아 있는 것보다는 햇볕을 받으며 걷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백혈구 수치와 혈소판 수치는 낮은 편이지만 전날 혈액검사 결과와 비슷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뎅기열은 치료약도 없기 때문에, 해열진통제와 발진으로 인한 가려움증을 완화해 주는 항히스타민제만 처방해 주셨다. 간단한 혈액검사를 하고 수액을 맞고 타이레놀과 항히스타민제 몇 알을 받았는데 $620.95(2023년 환율로 약 58만 원)을 냈다. 아들이 빨리 회복할 수 있다면 돈이 더 들어도 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우선 재택치료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라고 하셨다. 아들은 그 후 며칠 더 고열과 발진, 근육통, 식욕감퇴로 고생을 한 후 점차 회복했다.     


싱가포르에 오랫동안 살면서 나는 많은 것을 경험했고 이제 모르는 게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뎅기열에 걸리면 그렇게 몸이 아픈지 처음 알게 되었다. 뎅기열 감염자 중 약 75%는 무증상감염이라고 한다. 뎅기열은 4개 혈청형이 있는데, 이전에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다른 혈청형에 재감염되면 중증 뎅기열로 진행되기 쉽다고 한다. 뎅기열은 예방 백신도 없기 때문에 아데스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싱가포르 MOH 자료 참고) 아데스 모기에 물린 후 4일에서 7일의 잠복기 후에 고열이 난다고 하니, 아들이 어디에서 모기에 물렸는지 알 수가 없다. 


요즘 싱가포르에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 같다. 시내가 아닌 외곽 지역으로 갈 때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모기기피제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일이면 출장 간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아빠가 없을 때 잘 아프다. 남편을 보면 참아왔던 눈물이 터질 것 같다. 남편도 지난 며칠간 멀리서 많이 애태우며 일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단단하게 버텨 줄 거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아무 일도 없는 오늘 하루가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잘 회복해 준 아들에게 고맙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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