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늘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꼭 심폐소생술을 배워야겠다고. 심정지로 쓰러진 환자에게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목숨을 구했다는 기사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접했다. 두 달 전, 제주의 한 버스 기사님이 평소 배운 심폐소생술로 갑자기 쓰러진 승객의 생명을 살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올해 초에는 길을 지나가던 여고생들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중년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살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발만 동동 굴렀을 것이다.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심폐소생술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며칠 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공고문이 붙었다. 내용은 아파트 수영장 세 곳에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설치되었고, 아파트 주민 선착순 30명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CPR+AED) 무료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실기와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싱가포르 심장재단에서 발급하는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공고문을 보자마자 바로 신청했다. 며칠 후, 담당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심폐소생술 교육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첨부된 퀴즈를 풀어 사전에 제출해야 한다는 안내였다. 나는 첨부된 유튜브 동영상을 여러 번 시청한 후 퀴즈를 풀었다. 10점 만점 중 8점 이상을 받아야 했다.
지난 일요일 아침,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으러 아파트 다목적홀로 갔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행사 관계자들도 꽤 많이 있었다. 모두 싱가포르 심장재단(Singapore Heart Foundation) 로고가 있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싱가포르 심장재단 관계자가 인사말을 전했다. 싱가포르 시장님도 오셔서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셨다. 심폐소생술은 ‘4분의 기적’이라 불린다.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주변 사람이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뇌 손상 없이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면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2배 이상 높아진다고 설명하셨다. 모두들 교육을 잘 받길 바란다는 말씀도 전하셨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기 전, 관계자가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장님의 연설이 끝난 후, 각자 배정된 그룹으로 이동했다. 한 그룹 당 4명-5명씩 배정되었고, 우리 그룹은 5명이었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참가자들이었다. 젊은 트레이너 선생님이 우리를 반겼다. 빨간 천 위에는 심폐소생술 교육용 마네킹이 놓여 있었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심폐소생술을 시연해 주셨다.
먼저 환자를 단단하고 안전한 바닥에 눕힌 후, 어깨를 두드리며 큰 소리로 “여보세요, 괜찮으세요?(Hello, Are you OK?)"라고 물어 의식을 확인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995(싱가포르 앰뷸런스 요청 번호)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하고, 주변에 자동심장충격기가 있으면 가져오라고 외친다. 환자의 명치에서 손가락 2마디 위의 부위에 한 손바닥을 올리고, 다른 손을 그 위에 겹쳐 깍지를 낀다. 양팔을 쭉 펴고 환자의 몸과 수직이 되도록 체중을 실어 가슴을 압박한다. 분당 100회-120회, 4cm-6cm 깊이로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가슴 압박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마네킹과 블루투스 모니터가 내가 시행한 가슴 압박을 분석해 그래프와 점수로 보여주었다. 체중을 실어 일정한 속도로 정확한 깊이까지 압박하는 게 쉽지 않았다.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얼굴이 상기되며 숨이 찼다. 2분이라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만약 주변에 교대할 사람이 없다면 과연 내가 이 과정을 혼자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10초 이상 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모두들 손바닥과 손등이 시뻘게졌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자동심장충격기(AED)로 자동심장충격을 준 후,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한다.
이어서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을 배웠다. 우선 금속, 물, 화염 등 위험 요소가 없는 안전한 장소에 환자를 눕힌다. 자동심장충격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장갑을 낀 후 두 개의 패드를 부착한다. 하나는 오른쪽 빗장뼈 아래, 또 하나는 왼쪽 유두 아래 중간 겨드랑선에 부착한다. 패드와 본체를 연결한 뒤, 자동심장충격기에서 심장리듬 분석을 시작한다는 음성이 나오면 심폐소생술을 멈춘다. “물러서세요!(Stay Clear)”라고 외치며 양팔을 벌리고 주변 사람들이 환자에게서 떨어지도록 한다. 자동심장충격이 필요하다는 음성이 나오면 충격버튼을 누른다. 자동심장충격 후에는즉시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지도 아래 그룹원들과 함께 반복해서 연습했다. 2명씩 짝을 지어 심폐소생술 역할극도 했다. 단계별로 생각하지 않고 몸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이후 한 명씩 실기 시험을 보았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한 후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과정을 테스트했다. 다행히 우리 그룹 모두 실기시험을 통과했다. 이어서 필기시험을 봤다. 15점 만점 중 12점 이상 받아야 했는데,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우리 그룹원 전원이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한 덕분이었다. 트레이너 선생님과 그룹원들은 활짝 웃으며 서로 축하를 나누었다. 힘들었지만 내 이름이 적힌 심폐소생술(CPR+AED) 자격증 카드를 손에 쥐니 너무나도 뿌듯했다. 교육은 오전 9시 반에 시작해 오후 12시가 조금 지나 끝났다. 3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교육을 받았다. 배가 고팠다. 마침 다목적홀 밖에는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시장님이 준비해 주셨다고 했다. 시장님은 몸소 심폐소생술 시범을 보이시고, 각 그룹을 돌며 격려해 주셨다. 내 옆에서 사진도 찍으셨고,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니 더 반겨 주셨다.
CPR+AED(심폐소생술) 자격증
집에 돌아오자마자 심폐소생술 자격증 카드를 꺼내어 가족들에게 자랑했다. 아이들은 나를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었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나와 같은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자격증은 2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받은 자격증 카드를 다시 꺼내어 뒷면의 문구를 천천히 읽었다. ‘이 카드 소지자는 심폐소생술에 대한 교육과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습니다’.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뿌듯했지만 동시에 그 책임감도 느껴졌다.
만약 내 주변에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다면 오늘 배운 대로 잘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잘못 시행해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면 어떡하지? 잠깐 걱정스러운 마음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을 받고 나니 든든했다. 만약 내가 심정지로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목격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것이다. 교육받은 대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행동하면 된다.무엇보다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시행해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4분의 기적,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