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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Feb 21. 2022

입학식도 졸업식도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아이들에게 꽃다발 한번 주지 못했다

     

아이들은 싱가포르 로컬 유치원을 시작으로 로컬 고등학교까지 14년을 이곳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큰아이, 작은아이 둘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보냈지만 우리나라 입학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행사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처음 아이를 공교육 기관에 입학시킨다는 설렘에 마음이 잔뜩 부풀었었다. 입학식에 가지고 갈 꽃다발을 사려고 싱가포르 친구에게 꽃가게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친구의 답은 너무 뜻밖이었다. 공식적인 입학식도 없고 꽃다발을 준비해 갈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앤젤라, 정말이야? 진짜로 입학식이  없어?”

“응, 뭐 그런 특별한 행사는 없어. 입학하는 날 부모 같이 등교해서 아이 배정받은 교실에 들어가는 걸 보고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오면 돼. 딱히 스페셜한 행사는 없을 걸. 아마 꽃다발 들고 오는 부모들도 없을 텐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앤젤라의 말을 그냥 흘려버리고 꽃다발을 사 갈까 하다가 결국 빈손으로 학교에 갔다. 학교는 이미 아이와 같이 온 부모들로 복잡했다. 앤젤라의 말대로 손에 꽃다발을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강당에서 담임 선생님과 학급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다가 교실로 갔다. 부모들은 밖에서 기다리다 점심시간이 되어 자신의 아이 잠시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학교에서 급식이 나오는 게 아니라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 먹거나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는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아들이 스로 밥을 사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아들과 같이 집으로 왔다. 입학식도 꽃다발도 없이 사진 몇 장 찍은 것으로 입학을 기념했다.     


설마 졸업식은 있겠지 했는데 정말 졸업식도 없었다. 졸업식이 없다는 건 입학식이 없다는 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섭섭했다. 초등학교 6년을, 그리고 중고등학교 6년을 애써 공부하고 졸업하는데 졸업식이 없다는 게 참 많이 아쉬웠다. 한국에서업식에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장 선생님의 훈시말씀에 이어 졸업장 및 개근상, 성적우수상과 같은 상장 수여 그리고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 그리고 졸업식의 하이라이트인 졸업식 노래를 부르며 끝을 맺 줄 알았다. 싱가포르의 다른 학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도 리 아이들이 다닌 초중고등학교들은 그런 졸업식이 없이 매 학년 말에 치러지는 성적우수 시상식만 있었고 상을 받는 아이의 부모만 학교에 초대되어 갈 수 있었다.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엔 나도 초대를 받아갔지만 고등학교 졸업하는 날엔 가지 못했다. 다행히도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3등 이로 졸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식을 대신하여 프롬(Prom)이라고 하는 졸업 파티를 했다.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턱시도를 입고 어울려 졸업 축하 파티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꽃다발 한번 주지 못하고 초중고등학교를 졸업을 시켰다.     


생일이 2월 말인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일 년 일찍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윗옷에 옷핀으로 꽂은 흰 손수건을 달고 노란 교대 부국 가방을 손에 들고 학교에 갔다.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 무대 위에서 노래 어린이를 찾았고 나는 번쩍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가 노래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한테 작고 네모난 알록달록한 색의 고무지우개를 사달라고 하기 위함이었다. 학창 시절 입학식과 특히 졸업식에는 늘 외할아버지와 큰 이모가 오셨다. 외할아버지는 항상 정장 모자를 쓰고 오셔서 사진도 찍고 또 필요한 걸 사라고 용돈도 주시고 같이 자장면을 먹는 것으로 축하해 주셨다. 친구들과 헤어짐이 섭섭했던 중고등학교 졸업식엔 아쉬운 마음에 한참 동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고 대학교 졸업식엔 친구들과 모두 까만 졸업 가운을 입고 하얀 리본을 매고 교정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꽃다발 몇 개를 가슴에 품고 축하를 받는 것은 새로운 시작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끝맺음의 상징이었다. 나에게 학창 시절의 입학식과 졸업식은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직까지 엄마의 추억 속 이야기로 전해 들을 뿐이다.


아이들을 로컬 학교에 보낸 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고 잘 성장해 주었다. 다만 아이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초중고등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의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딸아이는 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입학식도 없이 그것도 코로나19 유행 때문에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으로 첫 학기를 시작했지만 다행히 이곳에도 특성화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졸업식만큼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이 치러진다. 꽃다발도 주고 사진도 찍고 파티도 하며 배움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4년 뒤 딸아이 졸업식에 줄 꽃다발을 그려본다. 향기 좋은 분홍 장미 한 다발을 줄까, 꽃잎이 예쁜 카네이션 한 다발을 줄까 아니면 싱가포르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노란 해바라기 꽃을 아이의 행운과 행복을 빌며 한 아름 가득가득 안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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