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K-POP, K-드라마, K-푸드 등이 유행하기 전,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린 한류의 원조이다. 싱가포르의 폴리테크닉(전문대학교)과 대학교에는 태권도 동아리가 있어서 관심 있는 학생들이 쉽게 태권도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다수의 중고등학교에도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태권도 수업이 개설되어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각 지역 주민자치센터에도 태권도 강좌가 열린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태권도 역시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신문과 인터넷 교육 신문 사이트 스쿨백(SCHOOLBAG)에서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 싱가포르 에지필드 중학교(Edgefield Secondary School)에서 시행 중인 특별한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2011년부터 전교생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의무적으로 매주 한 시간씩 태권도 수업을 받으며, 거의 모든 학생이 중학교 2학년 말까지 파란 띠를 딴다. 중학교 3학년과 4학년(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희망자에 한해 계속 수련을 받아 승급할 수 있다.
에지필드 중학교 태권도 프로그램 책임자인 제프리 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목적은 존경과 절제, 그리고 회복탄력성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은 태권도 수련을 위해 강당에 들어가기 전에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사범님과 선생님께, 그리고 서로 간에도 인사를 나눕니다. 상호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선생님과 사범님도 학생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합니다." 태권도는 능력이나 배경, 신체적 특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다. 연습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태권도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예술이라는 점도 강조되었다.(출처:
이 기사를 읽는 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술이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단순히 스포츠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신을 배워 삶에 필요한 자질을 갖추는 것이 태권도 수업의 목표라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녔을 때, 싱가포르인 태권도 사범님이 운영하는 도장에 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한국인 사범님이 운영하는 도장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태권도 수련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길 바랐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이 “얍!”하고 기합소리를 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길 기대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신체놀이와 함께하는 태권도 수련을 아주 즐거워했다. 사범님이 한국말로 “차렷!, 경례!” 외치며 아이들과 서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이들이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도 한국말을 듣고,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 나로서도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태권도 수련을 계속했다. 그 무렵, 다행히 우리 집 근처에 싱가포르 최초의 한국인 사범님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이 생겼다. 아이들은 발차기 기술을 배우고, 상대방과 겨루며 땀을 흘렸다. 품새 수련을 통해 집중력과 끈기도 길러졌다. 승급심사를 통해 꾸준히 띠를 올렸다. 그 당시에는 일 년에 네 번 승급심사가 열렸고, 심사를 놓치면 다음 승급심사까지 석 달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은 몇 년간 꾸준히 수련하여 빨간색과 검은색이 반반 섞인 품띠까지 땄다. 한국인 사범님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은 입소문을 타고 점점 수강생이 늘어났다. 싱가포르 아이들뿐만 아니라 서양 아이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10여 년 전과 비교해 현재 싱가포르에서 태권도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 전역에 약 300여 개의 태권도장이 있으며, 그중 20여 개는 한국인 사범님이 운영하는 도장이다. 태권도 수련 인구는 약 3만 명에 달한다. 올해 태권도 특기생을 뽑은 싱가포르 현지 중학교는 5개 학교였다. 나는 태권도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자세히 듣고 싶어, 오래전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셨던 싱가포르 최초의 한국인 태권도장 관장님인 김종윤 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관장님, 수련생들의 국적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싱가포르인 60%, 서양인 30%, 한국인은 10%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한국인 비율이 적네요.”
“네, 아무래도 한국과 비교하면 수업료가 비싸고,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영어 또는 중국어 교육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습니다.”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요?”
“초등부 60%, 청소년부 15%, 유치부 10%, 성인부 12%, 60세 이상 시니어부가 3% 정도 됩니다.”
“60세 이상 수련생도 많나요?”
“네, 현재 50여 명이 있습니다. 68세 린다 수녀님, 78세 린소 할머니도 수련 중이십니다. 특히 린소 할머니는 태권도를 배우기 전에는 잘 걷지 못하셔서 물리치료를 받으셨는데, 다년간 수련을 통해 이제 스쿼트도 하시고 태권도 2단까지 따셨습니다. 태권도가 삶의 목표가 되셨다고 하십니다.”
“10여 년 전보다 태권도가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더 알려졌나요?”
“수련자가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특히 요즘은 시니어분들도 많이 등록하고 계십니다. 자녀가 태권도를 배우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함께 등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싱가포르 학부모들은 태권도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태권도를 놀이나 체력 증진을 위한 활동보다는 인성 교육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권도의 정신과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60세 이상 시니어 클래스에서 수련하는 어르신들
싱가포르에서는 에지필드 중학교처럼 전교생이 태권도를 배우는 학교가 있으며, 자녀들의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 태권도를 배우게 하는 부모들이 많다. 이는 태권도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교육적 가치가 높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태권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 무예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태권도가 문화적으로 더 친근하게 다가가, 싱가포르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