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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un 25. 2023

싱가포르에 오면 '반 고흐 몰입형 체험'을 해 보세요

센토사(Sentosa) 섬 관광 후 꼭 들러 보세요

    

반 고흐 몰입형 체험 (Van Gogh: The immersive Experience-Singapore) 전시회에 갔다. 티켓은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를 했다. 싱가포르 거주자일 경우 성인(13세 이상) 일반 티켓은 $24(약 23,000원), VIP 티켓은 $36(약 35,000원)이었다. VIP티켓을 사면 대기 없이 입장이 가능하고 가상현실(VR)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았다. 대기줄도 없어서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입구로 들어갔다. 어둑한 통로 양쪽에는 검은색 천에 프린트해 놓은 반 고흐의 다양한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따스한 조명이 그를 비추었다. 입구에서부터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쭉 걸려 있는 반 고흐의 여러 자화상을 보며 걸으니 마치 반 고흐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듯 느껴졌다.

    

반 고흐의 다양한 자화상


맨 먼저 반 고흐의 얼굴 석상이 있었다. 하얀 얼굴 석상에 빛을 여러 각도에서 투사하여 얼굴이 점차 파란빛으로 물들었다가 빠지기를 반복했다. 얼굴 석상 옆에는 반 고흐의 대표작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 원작이 아닌 사본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서 <밤의 카페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시에스타>, <까마귀가 나는 밀밭>,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아이리스>가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조금 가까이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조금 뒤로 물러서서 감상했다. 작품 왼쪽에서 보다가 오른쪽에서 보았다. 앉아서 보다가 서서 보았다. 색의 배합, 붓터치와 같은 디테일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작품 전체를 보았다. 한 작품을 오래도록 천천히 감상했다.


얼굴 석상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시에스타>, <까마귀가 나는 밀밭>,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 <아이리스>


또 다른 벽면에는 <해바라기>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었다. 바닥에 놓여 있는 해바라기 시리즈,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시리즈가 한쪽 벽면을 장식했다. 강렬한 노란색이 조명 아래 빛났다.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그림 여러 점은 그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될 폴 고갱의 침실을 꾸미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허름한 방을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으로 꾸며주고 싶었던 반 고흐의 마음이 느껴졌다. 기쁘고 설레고 희망찼을 것이다. 나는 한참 동안 서서 해바라기 작품을 감상한 후 안쪽 공간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반 고흐가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윤곽선이 특징이라고 했다. <아를의 침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도 있었는데 직접 들어가서 그의 방을 둘러보고 의자에 앉아 볼 수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시리즈


<아를의 침실>


이번 전시회에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공간으로 들어갔다. 360°디지털 프로젝션과 그림을 비추는 조명, 사운드를 체험할 수 있는 대형 공간이었다. 최신 디지털 투영으로 반 고흐의 작품들을 확대하여 보여주었다. 바닥과 벽면은 그의 작품들로 투영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간 안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의자가 많이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보들보들한 카펫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어서 그 위에 앉거나 누울 수 있었다. 모두들 각자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눕거나 벽에 기대어 반 고흐의 작품 세계에 빠져 있었다.      


<해바라기>


나도 나무 벤치에 앉았다. 등받이가 있는 캠핑의자에 앉고 싶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림에 어우러지는 음악이 흘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뭔가 신비로운 음악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벽에 투영된 작품들을 감상했다. 조금 후 캠핑의자가 비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았다. 몸이 뒤로 편안하게 젖혀지니 이내 긴장이 풀렸다. 몸도 마음도 아주 편안했다. 벤치에 앉아서 볼 때보다 훨씬 여유로워졌다. “정말 좋다... 너무 예쁘다... 진짜 행복하다.” 내 말을 듣고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정말 좋네.” 남편과 나는 둘이 말없이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했다. 벽면은 작품에 따라 파란빛, 노란빛, 초록빛 등 다양한 색채로 물들었다. 나는 머릿속 생각을 비우고 그저 스크린만 바라보았다. 온몸이 반 고흐의 작품에 푹 잠긴 듯 느껴졌다. 마치 반 고흐와 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몰입해 버렸다... 반 고흐의 인생이 나에게로 왔다.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별이 빛나는 밤>


출구로 나가기 전 VR체험을 하는 공간으로 갔다. VR기기를 쓰고 앉아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VR 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옆 공간에서 반 고흐의 작품이 프린트된 도안 몇 장을 골랐다. 그 자리에서 색칠을 할 수 있도록 크레파스도 제공되었다. 직접 그린 그림을 스크린에 띄울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출구는 해바라기 조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해바라기의 배웅을 받으면서 체험을 마무리했다.   


해바라기로 장식된 출구


고요한 밤이 되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반 고흐 관련 책들을 모두 꺼냈다. 빈센트반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신성림 옮김, 김정일, <내 손 안의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정우철,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 극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반 고흐는 진지한 화가였다.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출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길게 메아리쳤다. 안방 창문을 열어젖혔다. 반 고흐가 보았던 별밤이 내 눈에도 보였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며 희망을 꿈꾸었던 반 고흐, 자연을 사랑했던 반 고흐, 색채를 통해 삶을 표현했던 반 고흐를 나는 더욱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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