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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Jul 18. 2023

"사랑해요"라고 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엄마에게 보낼 답장을 계속 미뤘다

  

사랑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며칠 전 화실에서 처음 그린 풍경화를 사진으로 찍어 엄마에게 보내 드렸다. 이미 엄마와 30분 이상 통화한 상태라서 메시지를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엄마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정말 대단하다. 어째 처음 그린 그림을 이렇게 잘 그렸노.

참 엄마가 딸 하나는 멋지게 낳았네.

고마워. 사랑해.”


문자메시지는 “사랑해라는 말로 끝맺었다. 얼굴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엄청 쑥스럽고 어색했다. 아니, 오글거렸다. 50년 이상 엄마와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서 서로 말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몰랐다. 나도 “사랑해요”라고 써서 보낼지, “고마워요”라고만 써서 보낼지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메시지만 읽고 답을 안 해버렸다. 충분히 통화를 했으니까 답장을 안 보내도 괜찮겠지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쓰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문득 예전에 수강했던 다문화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것이 생각났다. 교수님은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에 대해 알려 주셨다. 미국, 독일과 같은 저맥락 문화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이나 문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반면,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고맥락 문화권 사람들은 주변 환경, 상황, 문맥에 따라 간접적인 의사소통을 선호한다. 즉, 상대방이 이미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거였다. 나는 엄마와 늘 그렇게 간접적인 의사소통을 해 왔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착이었기 때문에 굳이 감정 표현을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대상을 매개로 하거나 몸짓과 표정 등 우회적으로 감정 표현을 했다. 한국에 가서 친정에 머무는 동안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 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 오셨다.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서 창밖을 보며 이야기하고 함께 쇼핑하며 즐거워했다.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고 애썼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고, 엄마도 나와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행동 등으로 사랑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50대가 된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런 간접적인 의사소통에 익숙다. 하지만 해외에 살면서 외국인들과는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해야 다는 것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알게 되었다. 내 의사나 감정을 말과 문자로 정확하게 표현해야 서로오해하지 않고 신뢰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때 내 감정을 모호하게 표현해서 상대방이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이가 전보다 더 어색해지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권에 속해 있지만 저맥락 문화권에 속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기 때문이다. 나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그들의 문화와 사고는 나와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싱가포르 친구가 있다. 친구와 좀 가까워졌을 때였다. 친구는 내게 ‘Love you dear’라고 써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 나는, 친구가 자기 남편에게 할 말을 왜 내게 했을까 싶었다. 그 말은 친한 친구에게 흔히 쓰이는 말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Love you dear’라는 말을 잘 쓰지 못한다. 늘 ‘내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오늘 즐거웠어. 네가 있어서 든든해.’ 등으로만 표현할 따름이다.


남편은 나에게 “ㅇㅇ 씨, 사랑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주로 “응, 나도요”라고 대답하는 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지. 남편은 “ㅇㅇ 씨는 주로 대답하지”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사랑해요”라고 자주 말한다. 어릴 때부터 스킨십도 많이 해  내 마음을 말로도 많이 표현했다. 아이들과 나는 “좋아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자기 전에 딸에게 “사랑해요”라고 하면 딸은 “엄마, 나도 사랑해요. 하트”라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을 서로 표현하니 한결 더 그 마음이 깊어진다.


엄마와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래포(공감적인 인간관계, 믿음과 친함)가 있지만 표현을 하지 않고 살았다. 80대 부모님들 중에 당신들의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성장하신 분들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엄마는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사람이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엄마는 말로 표현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엄마를 본받았다. “고마워요. 감사해요. 미안해요.”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게 잘한다. 그런데 “사랑해요.”라는 아름다운 말 남편에게조차 아꼈다.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넘치도록 해 주었다.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해서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그동안 내게 직접적인 표현을 지 않았는 어떻게 갑자기 "사랑해"라고 썼는지. “글쎄, 이제 나이가 80살이 되니 그런 말이 나오네. 손자들한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인데 너희들한테는 그렇게 못했다”라고 하셨다.


'사랑'이라는 말은 원래 '생각하다'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즉,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계속 생각하고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다. 나는 늘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를 그리워한다. 조수미 님이 부른 '바람이 머무는 날'에 나오는 가사처럼 "헤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어제처럼 한결같이" 엄마를 사랑한다. 그동안 나는 ‘사랑’, ‘사랑하다’를 사용하는 데에 많이 인색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도 서툴렀다. 이제 나도 용기 내어 써 본다. "엄마, 항상 고마워요. 나도 많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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