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ongkong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환희 Feb 17. 2017

Hongkonger

Intro

그래, 저 사람은 나다.


1.
여행과 일상엔 분명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여행처럼 일상을 영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일단 일상에 허덕이다 보면 그 말조차 생각이 안 나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나는 여행의 삶을 일상에 반영시키려 시도해왔으나 매번 철저히 실패하곤 했다. 아마 이제는 그것이 성공할 것이라는 가능성 마저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홍콩에서 3주간 머물렀다. 3주라는 시간은 여행의 시선에 일상의 시선이 어느 정도 물들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나는 홍콩에서 바쁘게 일을 하지도, 어마어마한 렌트비를 지불하기 위해 허덕이지도, 수많은 사람에 치여 정신없지도 않았지만, 내가 본 것과 내 옆에 있던 이들은 대개 그런 일상에 있던 이들이었다.

2.
만나는 호스트마다 홍콩에서의 삶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4명 모두, 싫다고 했다.

나는 홍콩이 너무도 좋았다. 길을 걷다 사무치는 행복에 사로잡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행을 자주 다닌 나도 꽤나 오랜만에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었다. 가끔은 너무 좋아서 혼자 욕(!)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시옷으로 시작되는 두 음절의 욕은 부정과 긍정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참 신선한 모습이었다. 내가 즐거워 한 것은 대개 홍콩인들에겐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니까 아침 재래시장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팔고 사는 이들을 보면 좋았고, 족히 4~50년은 된 낡고 오래된 건물이 빼곡한 길가를 보면 좋았고, 수많은 불빛이 아른거리는 홍콩의 밤을 보면 좋았다. 심지어 나는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하루의 모든 피곤함을 안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느낀 것은 어떤 상대적인 행복은 전혀 아니었고, 그냥 그런 풍경 자체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홍콩은 여행하기는 좋지만, 살기는 버겁다."라는 결론은 홍콩에서의 삶에 대한 질문의 끝 무렵에 매번 나왔던 말이었다. 허나 그것은 단지 홍콩만의 특징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도시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대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진정으로 행복에 겨워 도시의 일상을 사는 이들은 쉬 찾아볼 수 없다. "아 오늘 공과금 납부, 대출금 상환, 반복적이고 고된 업무를 하는 게 너무도 즐거웠어. 빨리 내일이 되어서 사람에 낑겨 지하철 타고 직장에 나갔으면 좋겠다."하는 이를 나는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 했다.

3.
서울의 고시원에 살며 기형도의 시를 자주 보곤 했다. 마침 내가 머물던 고시원은 종로 탑골공원 근처, 그러니까 기형도가 죽은 종로의 심야극장 옆이었으니 기형도의 삶이 더 극적으로 와 닿았다고 나 할까... 어찌 되었건 나는 '조치원'이라는 시를 자주 읽었는데,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도시는 필연적으로 사람에게 분노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도시의 속성이고 무리 지어진 사람의 속성이다. 허나 그것은 분명 '일상'의 영역이기도 하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은 족히 천만 명이 넘는데, 이들이 모두 분노를 체험하고자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콩을 찾는 수많은 한국의 관광객 역시 홍콩인들이 느끼는 일상의 무게와 분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걸 보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홍콩은 과도하게 화려하다.

4.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 홍콩이 내려다보이는 라이언 락(Lion Rock)에 올랐다. 대개 여행자들이 야경을 보기 위해 찾는 피크(Peak)에서의 시야와 라이언 락에서의 시야의 차이점은 눈에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피크는 홍콩의 모든 화려함과 자본의 집약체인 홍콩섬, 특히 센트럴과 완차이의 거대한 빌딩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다음으로는 역시 화려한 빅토리아 하버, 그다음으로는 온갖 쇼핑과 상업시설이 모여있는 침사추이가 보인다. 그 눈앞의 화려함 때문에 멀리 보이는 공공주택들에는 시선이 가지도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라이언 락에서의 야경은 이와 딱 정반대에 있다. 라이언락의 시선은 일단 수많은 공공주택단지에서 시작하여 홍콩섬으로 향한다. 월세 2,500홍콩달러(약 27만원)에서 시작하여 월세 몇십만 홍콩달러를 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라이언락의 시선은 일종의 홍콩인들의 '출근길', '자본과 부의 방향'이다. 화려함은 멀게 일상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다.

5.
산 위에서 내가 3주간 다녔던 곳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머리가 아니라 실제 눈으로 하나하나 살폈다. 라이언 락의 조망은 충분히 그것을 가능케해줄만큼 높고 넓었다. 이를테면 나는 낡은 것들이 살아있는 토콰완 거리(To Kwa Wan Rd)를 보았다.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내 취향이 모여있는 보물을 발견하곤 재빨리 도로명을 메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축 위엔 아파트 단지(Chuk Yuen South Estate)는 특유의 네모난 건물모양이 눈에 띄었다. 아파트 안에서 고개를 올려 네모난 하늘을 담은 사진을 찍곤 했는데, 라이언 락에서는 그 모양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 신선했다. 샤틴(Sha Tin)은 어떠한가. 한국의 신도시와 같이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든 홍콩의 뉴타운 중 하나인 이곳을 나는 그 수많은 아파트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았다. 싱문강을 따라 5키로 정도를 걸으며 강 건너편 내가 원했던 아파트 성벽의 풍경을 보고 하염없이 즐거워하던 시간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홍콩의 최고봉 타이모산(Tai mo Shan). 홍콩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올랐던 그곳은 홍콩은 그저 도시의 이미지만을 가질 것이라는 내 편견을 확실히 깨주었다. 홍콩에는 거친 산과 높은 폭포, 사람 몸만한 잎을 가진 열대우림이 있다는 사실을 그 산에서 알게 되었다. 그저 하이킹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땅이 홍콩이라는 사실의 발견이었다.(홍콩은 국토의 70%가 산지이고 신계에는 아주 많은 천연의 자연이 있다)

6.
밤이 깊어질수록 홍콩의 야경은 빛을 발했다. 홍콩은 유난히 반짝임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반짝임은 모두 누군가의 일터이자 집이다. 야경은 결국 수많은 일상이 발하는 빛이다. 바쁠수록 반짝이기 마련이다. 나는 주말엔 야경을 보러 어디 올라가질 않는다.

7.
내 여행의 시선은 대개 일상을 향한다. 내가 홍콩에 강렬하게 끌린 이유는 아마 그 일상이 너무도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8.
나는 내 일상을 여행하는 법을 여전히 체득하지 못 했다. 그러나 남의 일상을 여행하는 데는 아주 도가 튼 사람인 듯하다. 잘하는 걸 하자. 좋아하는 걸 계속하자.

9.
홍콩, 도시와 일상과 사람을 여행한다.
'Hongkong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