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 선유도
선유도는 내가 군산을 찾는 가장 선명한 기억이다.
선유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더 자주 떠올렸다. 섬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길은 변함없이 이어지지만, 그 위를 지나온 시간들은 대부분 증발해 있다. 기억은 늘 남아 있는 것처럼 말해지지만, 실제로 삶의 대부분은 기억되지 않은 채 사라진다. 걷는다는 행위는 그래서 남은 기억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사라진 기억의 빈자리를 밟는 일에 가깝다.
이곳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이 땅에 60cm의 눈이 내렸던 날이다. 풍경은 과장될 정도로 하얗게 덮였고, 섬은 일상의 섬이 아니라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형태를 유지한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선명함은 예외다. 문제는 그 외의 수많은 날들이다. 분명 이 섬을 걸었고, 바다를 보았고, 바람을 맞았을 텐데, 그 기억들은 어디에도 없다. 있었다는 확신만 남아 있을 뿐, 장면도 감정도 증거처럼 제시할 수 없다.
잃어버린 기억은 대개 너무 평범해서 사라진다. 특별하지 않았고, 위협적이지 않았고,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의미 있는 것을 남기는 장치가 아니라, 위태로웠던 것을 임시로 저장하는 장치에 가깝다. 삶이 무사히 통과한 순간들은 굳이 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잃어버린 기억은 실패가 아니라, 삶이 큰 흔들림 없이 흘러갔다는 증거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인간은 기억되지 않는 시간을 허무로 오해한다.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미 없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기억의 부재는 공백이 아니라, 침묵에 가깝다. 말해지지 않았을 뿐, 그 시간은 분명히 작동했고,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동시켰다. 기억나지 않는 날들이 없었다면, 선명한 기억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대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선유도를 도는 동안, 나는 선명한 눈의 기억보다 오히려 떠오르지 않는 장면들에 더 오래 머문다. 어디쯤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누구와 걸었는지, 왜 그날 이 길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그 무지 속에서 깨닫는다. 삶의 대부분은 기억되지 않음으로써 유지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잊어버림 위에 서 있는 존재다.
길의 끝에서 돌아보면, 이 섬은 기억의 장소라기보다 망각의 장소에 가깝다. 그러나 그 망각 덕분에 삶은 과도하게 무거워지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이동할 수 있다. 잃어버린 기억은 삶의 결손이 아니라, 삶이 스스로를 보호한 흔적이다. 남은 기억이 나를 설명한다면, 사라진 기억은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선유도의 풍경은 비로소 현재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