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환희 Oct 07. 2015

아이들의 발걸음 그리고 책임의 무게

드레스덴, 독일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한 뼘만큼 혹은 그 이상 지면에서 떠있다. 뽀송뽀송한 깃털같은 느낌이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운 어른들의 발걸음과는 확연히 다른 산뜻함을 준다. 언젠가 기분이 좀 좋아져 아이들처럼 사뿐히 날라다녔던 적이 있다. 한 십 미터를 '아이들의 스텝'으로 이동했더니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쟤 왜저래?"라는 수군거림이 들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다 큰 어른'이었던 것이다.


'어린 아이'와 '다 큰 어른'의 발걸음의 차이엔 무엇이 있을까? 그건 아마도 '책임'일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늘 책임을 동반한다. 조금씩 커가면서 원하지 않아도 어깨 위론 '책임'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쌓여간다. 맘편하게 갔던 명절날의 친척집도 이런저런 잔소리와 해야할 일거리에 조금씩 부담감이 느껴지고, 한겨울에 수북히 쌓은 눈을 보고도 "와~ 눈이다!"가 아닌 "이걸 언제 치우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된다.(이건 다 설악산 근처에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3교대로 새벽 3시에도 일어나 눈을 치워야 했기에...) 좋은 것을 좋은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것을 고민하게 된다. 어느정도의 책임을 져야하는지 미리 판단해보고 이내 발을 빼기도 한다.


그렇다고 책임을 내치고 다시 방방뛰는게 옳은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거꾸로 가는 벤저민 버튼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보통은 그저 '무책임한 인간'이 될 뿐이니. 마주하는 것이 많을수록 책임져야 할 것의 범위도 커진다. 좋아하는 것만 책임지면 참 좋을텐데, 싫어하는 것, 그리고 한없이 슬픈 것 마저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생긴다. 결국 얼마만큼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는가가 좋은 사람의 척도가 된다. 책임지는 만큼 세상의 경계는 넓어진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짊어지고도 아이처럼 가볍게 뛸 수 있을때, 비로소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국의 계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