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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Oct 07. 2015

인도에서의 종교

바라나시, 인도

힌두교도들이 성스러운 갠지스에 몸을 담그고 있다


1. 

햇빛을 피해 길게 늘어진 자이푸르의 상점길을 걷다 사람을 마주쳤다. 그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이야기를 함께했다. 브라만인 그는 대략 한달간 인도를 여행한 내게 이렇게 물었다. 

"한달간 여행했으니 네가 가장 좋아하는 힌두의 신은 누구냐?"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할 것도 없이 "없다"라고 말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단순한 흥미거리라 해도. (근데 시바가 어감도 그렇고 좀 끌리는 듯...)

그는 자연스래 그렇다면 너의 종교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번에도 당연한 듯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황한 듯 종교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에게 왜 종교를 믿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Why not"이라고 답했다.


2. 

브린다반의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파란 벽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았다. 스티커에는 시바신을 중심으로 부처, 예수, 제우스등이 나란히 있었다. 힌두신화에는 3억 3천이 넘는 신이 있다. 이 숫자는 아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은 인도의 인구보다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가정에선 보통 여러 신을 모신다. 아마 예수를 믿어보라고 권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다만 예수'만' 믿으라고 하면 거부하겠지만.


3.

믿어야 '한다'가 아니라 믿는다. 인간이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종교도 그냥 함께하는 개념이다. 삶과 종교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나는 두가지를 분명 분리된 단어로 인식하지만, 이곳에선 대부분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4. 

인도에선 종교를 선택하고 신을 선택할 수는 있어도 종교 없음을 선택할 수는 없다. 인도 비자를 신청할 때, 한가지 당혹스러웠던 것은 종교란에 '종교없음'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나는 기타를 선택하고 기필코 '종교없음'을 써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악스러운 듯 하다.


5.

인도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던 암베드카르는 카스트에도 포함되지 않는 불가촉천민 출신이다. 그는 차별 속성에 대한 힌두교의 부조리함을 몸소 체험하고 오랜시간 불가촉천민의 기본권보장 등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 투쟁속에서 힌두교 아래에선 사회개혁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고, 1935년 힌두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시크교, 불교 등과 접촉을 하다 무려 22년이 지나서야 수많은(30만명 이상) 불가촉천민들과 함께 불교로 집단 개종을 하였다.


힌두의 부조리함을 평생 몸소 체험한 암베드카르 마저도 힌두를 버린 뒤 다른 종교를 '선택'했다. 그에겐 종교를 갖지 않는 선택지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반 대중들이 '종교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하다. 그래서 그는 차별성이 적은 불교라는 종교를 선택한 듯 하다.


6.

19세기 후반 노예제 폐지 이후 광산과 플랜테이션에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인도인이었다. 그때부터 전세계를 향한 인도인의 이주가 본격화 되었다. 모리셔스나 가이아나같은 나라는 인구 구성에서 인도인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지구 어느곳을 가도 인도인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인도라는 국가를 벗어나서도 대부분 종교를 믿는다.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인도인의 전세계 이주에는 펀잡지방의 시크교도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다. 시크교판 카스트라고 할 수 있는 상위의 자트 시크와 하위의 달리트 시크들은 함께 같은 땅으로 이주하기도 했는데, 그 땅에서도 공공연하게 달리트 시크에 대한 자트 시크들의 차별이 있었다. 그래서 달리트 시크들은 자트 시크가 운영하는 사원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다른 사원을 만들어 종교 생활을 이어갔다. 시크를 버리는게 아니라 '다른 사원'을 만들어 종교생활을 했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7.

여행에서 종교만큼 내게 이질적인 생각을 들게하는 것은 드문 듯 하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전혀 다른 생각이 함께 공존한다. 한편으로는 종교와 신을 부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받아들인다. 종교만큼 거대한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없기에 사실 받아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늘 거리감을 둔다. 주체가 나일 경우에는 조금 과도할 정도로 멀리하는 경향이 있고, 주체가 타자일 경우에는 거의 모든 면에서 수긍한다. 타인을 이해하면서도 그 사상자체는 부정하는 셈이다.


8.

암베드카르의 예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생각과는 별 상관없이 내 기준으로 말이다. 만약 내 신념과 어긋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따르는 것이(정확히 말하면 이용하는 것) 원하는 판을 짜는데 도움이 된다면(일반적으로 대중),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신념대로 행하는게 옳은 것일까. 상인이냐 서생이냐. 현실감각이냐 문제인식이냐. 어느 잣대에 조금 더 발을 디뎌야 하는건가. 구렁이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게 옳은 것인가. 그래서 정치인이 대부분 그러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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