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영국
런던의 호스트 알리의 집을 떠나는 날에는 내가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사진작가답게 자신의 손님들의 초상화를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며칠간의 깊은 대화와 세심한 관찰을 통해 대상을 상징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내어 그를 토대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처음 모델을 해보는 나는 어색한 포즈만을 선보였지만, 알리는 그 어색한 포즈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차분하게 작업에 임했다.
모델로서 작업을 해보면서 자연스러운 표정을 갖기가, 그리고 표현을 위해여 만족스러운 소통을 이뤄내기가 쉽지만은 않은 작업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나중에 누군가의 초상화를 찍게 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다가가야 되는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되었다.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도, 빛도, 구도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본연의 한 사람이었다. 모델을 대하는 것은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관찰하고, 지내온 삶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 모습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일종의 자기직시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은 그렇게 뽑아낸 본질을 담는 것이지 조악한 아름다움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삶도 특별하기에, 삶이 담긴 사진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