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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Oct 11. 2015

어느 아침

카탈루와, 스리랑카


이제는 늘 그렇듯 다섯시쯤 되면 알아서 눈이 떠진다. 알람이 울리든 울리지 않든 눈은 떠진다. 거기에서 다시 자느냐 일어나느냐는 순전히 전날의 풍경에 기인한다. 나는 참 아름다운 풍경을 해질녘에 맞이했다. 해가 지는 시간은 해가 뜨는 시간과 가장 비슷하다. 몸은 무거웠지만 바라볼 풍경이 그리워 카메라가 든 가방만 챙겨 밖을 나선다. 물론 씻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굳이 세수나 머리를 감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한국에서도 집에만 있으면 씻지 않는다. 내 고운 피부의 비결은 씻지 않는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해뜨기 전 걸어서 1분거리인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엔 떠돌이 개 두마리가 격하게 반겨준다. 나는 그 격함에 잠시 멈칫하고 발로 쿵 겁을주어 개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 네 혓바닥이 내 종아리를 핥는 것을 난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는 꾸물꾸물했다. 수평선따라 구름이 잔뜩 껴있어 해가 뜬다해도 바다가 아닌 구름 어딘가에서 잠시 '나 떴어!'라고 알릴 듯 했다. 멀리 야자수와 바위가 어울린 풍경이 보였다. 나는 푹푹 꺼지는 모래를 밟고 앞으로 갔다. 투명한 게들이 내가 가는 길에서 뿔뿔히 흩어졌다. 참 빠르게도 옆으로 다닌다. 난 참 느리게도 앞으로 가고 있다. 바위에는 참 많고 큰 반투명 게들이 있었다. 망둥어 같은 녀석도 있었다. 내가 바위에서 바위로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이들은 역시나 흩어졌다. 게들은 눈치를 보기 위해 눈이 그렇게 밖으로 튀어나왔나.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보였다. 일출은 구경도 못하고 끝났다. 구름이 점점 더 하늘을 감는다. 자리를 옮길까하고 버스를 탄다. 운전기사가 앉은 앞 유리창으로 빗방울이 보인다. 이내 와이퍼를 켜야 앞이 보일만큼 폭우가 쏟아진다. 괜히 버스를 탔다. 비오면 어차피 숙소로 돌아가야하는데. 다음 마을에서 바로 내린다. 버스에서 어느 지붕으로 향하는 길에 이미 나는 쫄딱 젖었다. 하늘을 본다. 구름은 어디에나 잔뜩 껴있다.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바다를 본다. 기대했던 스틸트 피싱은 없다. 누군들 비맞으며 낚시하고 싶은가.


일출을 보겠다는, 스틸트 피싱을 찍겠다는,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내가 있는 마을에는 없는 식당에 가 아침이나 먹겠다는 그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시 숙소로 향하는 길엔 폭우가 또 쏟아졌다. 찝찝함을 안고 방에 들어가 다시 침대에 누워 넷북을 켠다. 그래봐야 여덟시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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