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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Sep 23. 2015

쉬는 시간에 생긴 일

캔디, 스리랑카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려 근처 건물 밑으로 숨었다. 언제쯤 이 비가 그쳐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늘을 두리번거리다 전깃줄에 걸린 무엇이 보였다. 박쥐같다는 인상을 받았으나 확신이 안섰다. 왜 박쥐가 저러고 있는지 도통 납득이가지 않았으니. 근처에 있던 아저씨에게 물었다.

"저게 뭐에요?"

"Bat"

"Bat?"


박쥐가 맞았다. 그럼 이제 왜 저러고 있나 물어볼 차례다. 근데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놈은 찢긴듯한 모습이다.

"쟤들 죽은거에요?"

"응"

"왜요?"

"전기 감전되서" - 라고 몸으로 표현해 주셨다.


그랬다. 저 박쥐들은 아마 한밤 중 잠시 쉬기위해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것이다. 처음엔 괜찮았다. 전선은 발로 잡기에 딱 알맞았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세찬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는 비는 대롱대롱 매달린 박쥐를 흔들리게 했다. 박쥐의 몸은 공교롭게도 전선과 전선사이의 간격보다 길었다. 몸이 다른 전선에 맞대었다. 그리고 전기가 흘렀다. 비에젖은 박쥐의 몸뚱아리는 그렇게 타들어갔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길을 거닐며 전선을 유심히 살폈다.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에는 3마리, 혹은 4마리, 혹은 1마리 쯤 매달린 박쥐 시체가 있었다. 어느놈은 살아있는 듯 몸통이 온전했고, 어느놈은 마치 바람에 날려 전깃줄에 달라붙은 비닐 봉다리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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