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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Sep 24. 2015

캔디에서 하퓨탈레가는 기차에서

캔디에서 하퓨탈레가는 기차, 스리랑카


낡은 기차는 참 느리게도 산을 휘감아 오른다. 느리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빨랐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기차의 출입구에 앉아 풀내음 가득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으니. 풀이 기차 바로 옆을 스쳐갈 때는 내미었던 발을 다시 기차안으로 집어넣는다. 내 눈은 마주하는 풍경을 담고, 스쳐지나간 잔상을 따라가고, 행여나 내민 발이 다치지 않을까 장애물까지 의식하느라 바쁘기 그지없다. 경계의 끈이 느슨해진 터널에서는 한번 돌부리에 발을 채였다. 기차가 느렸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빨랐으면 꽤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저 아프기만 해서 다행이다. 내 앞 창가에 앉은 두명의 아이들은 기차가 흘러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머리 혹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손에 닿을 듯 풀이 가까워지면 손을 뻗어 풀을 낚아챘고, 그 흩어지는 잔해를 맞이하는건 순전히 내 몫이었다. 침이 바람에 날려 퍼지는 것을 흥미로워한 아이들은 가끔 침을 뱉기도 했다. 내 앞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침 덩어리를 보기 전까지 아이들은 즐거웠다. 내가 주의를 주기 전까지.


기차가 흐르는 5시간 동안엔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염없이 맑은 날이기도 하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안개가 가득하기도 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길은 열대우림이거나, 작은 마을이거나, 침엽수림이거나, 푸른 차밭이거나, 계곡이거나, 역시나 안개가 가득해 그저 하얀나라이거나 했다.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내보일 수 있는지 기차는 절실히 내게 말했다.


기차에서 그리고 기찻길 옆에서 꽤나 많은 사람들을 마주했다. 기찻길을 건너기 위해 기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참 자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노모와 탑승한 중년의 아저씨는 어머니를 품에 안고 바깥풍경을 소개해주느라 분주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아마 다시는 보지못할 스쳐지나가는 공간을 부여잡으려 열심히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바구니 한 가득 사모사를 파는 아저씨들은 객차와 객차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았다. 나는 냄새가 불어일으킨 허기에 당해 사모사를 사먹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시간 기차를 떠돌았는지 식어버린, 그래서 조금은 딱딱한 사모사였다.


풍경은 생각과 반비례하는 듯 하다. 반복되는 일정한 풍경은 참 많은 생각을 안겨주지만, 끊임없이 바뀌어 쫓아가기 바쁜 풍경에선 생각보다 보는게 먼저다. 나는 캔디에서 하퓨탈레로 향하는 기차에서 별다른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저 눈만 바쁘게,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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