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바라나시, 인도

by 유환희

1.

강아지가 죽은 무언가를 물어뜯는다. 머리가 없는데 털을 보니 염소인 듯하다. 그 옆의 한 강아지는 동그란 무언가를 주워 뜯는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염소의 머리통으로 추측된다. 여느 가트와는 다른 느낌이다. 어느 누구도 강아지의 행태를, 강가의 오물을 신경쓰지 않는다. 한 발자국. 경계를 넘었을 땐 삶의 다른 모습이 있다. 네팔에서 이미 화장을 보고 왔으나 그 느낌은 전혀 다르다. 갠지스의 화장은 조금 더 인위적이지 않다. 이런 표현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노골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듯 하다. 어느 한 곳에서만 화장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강가에서도 그 옆 사원에서도, 계단을 올라가도, 어느 구석에서도 화장이 진행된다. 네팔의 그것은 재만 남으면 강으로 모든 것을 밀어넣었는데, 이곳에서는 그것도 없는 듯 보였다. 재 위에 장작이 다시 올려진다. 그리고 또 다른 시신이 안치된다. 덮이는 나무도, 연기를 내는 젖은 지푸라기도 네팔에 비해 턱없이 적은 듯 하다. 장작의 길이와 시신의 신장이 맞지 않는 듯 정강이 이상이 장작 밖으로 나온 것도 흔하다. 타고 남은 몸통과 머리가 그대로 장작 위에 올려져 있는 것도 흔하다. 다시 말하지만 조금 더 노골적이다.


재와 연기와 숨죽인 사람들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화장터를 벗어나면 바로 옆은 시장이다. 시장엔 보통 장례식에 필요한 물품을 팔고 있다. 수많은 장작을 쌓아놓은 장작상점이 보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장작 값을 물었다. 주인은 “너도 필요하냐?”라는 농담을 던진다. 키로그램당 80루피. 한구의 시신을 화장하는데는 최소한 200키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격에 대한 대답을 듣는 순간에도 시신 한구가 나와 상점주인 사이를 지나간다.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문득 하얀재가 여기까지도 날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골목을 따라 조금 더 가보니 블루라씨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골목의 구석구석마다, 관광객이 발길을 놓치지 않도록 벽면에 페인트로 칠해놨다. 그 파란 광고판을 따라 가보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에 이미 다른 집에서 먹은 라씨이기에 간단한 플레인 라씨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이 많아 얼마간을 기다려야했다. 그 기다림에도 시신 두구가 블루라씨 앞 골목길을 지나간다. 시신을 든 사람들은 특유의 노래를 부르며. 그리고 쌀을 뿌리며.


삶과 죽음은 동떨어져있는 것이 아닌데도 늘 멀리 있다는 착각을 한다. 옆을 보니 화장터에서 봤던 관광객 무리가 보인다. 해맑게 웃으며 떠들고 있다. 당연한 것인데 왜 이렇게 이질적인지 모르겠다. 모두가 죽음을 목격하고 태연히 떠들며 라씨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70년 전통이라는 홍보문구가 보인다. 방금 지나친 망자도 그쯤 된듯 싶었다. 장작을 나르는 일꾼들도 골목을 지나친다. 쓰레기를 자전거에 싣고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보인다. 공교롭게도 블루라씨 위치를 가리켰던 표지판의 반대길은 죽은 자의 길이다.그 골목길은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2.

하루에 한번쯤은 화장터를 찾았다. 숙소에서 강을 따라 위로가든 아래로 가든 화장터를 만났기에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해뜨는 시각에 찾은 화장터는 오히려 더 동적이었다. 장례는 없었으나 갠지스 강을 타고 내려온 나무들이 곳곳으로 이동했다. 나무 배 위의 나무 장작. 장작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문득 며칠전에 들었던 키로그램당 80루피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상점에 가서 다시 물어보니 키로그램당 2루피란다. 또 다른 상점은 20루피. 또또 다른 상점은 10루피. 정가가 있으리라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흥정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큰 가격차이는 장작의 종류에 기인하는 편이다. 화력이 높고 잘타는 좋은 나무가 있다. 그렇지 않은 나무도 있다. 부유하거나 높은 카스트의 망자는 조금 더 비싼 장작에서 탄다. 싼 장작에 비싼 장작 몇 덩이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배려다.


어느 장작 상점 주인은 이곳에서는 대부분 싼 장작을 쓴다는 말을 해준다. 그러면서 비싼 장작의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고개를 돌리니 바로 잊어버렸다. 화장터에서 나오자 마자 보트 타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3.

화장터 바로 옆에서 공연이 열렸다. 탬버린과 비슷한 악기를 들고 춤을 추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4.

누군가는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보고, 누군가는 삶을 본다. 누군가는 타는 시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간다. 나는 죽음도 삶도 아닌 하나의 가느다란 선을 보았다. 나는 몇 시간을 바라보기도, 아무일 없는 듯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언어구조가 우리에게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듯 하다. 단어에는 반의어가 있다. 그러나 현상은 그 대립되는 단어의 극단에 놓인 경우보다 중간에 애매하게 놓인 경우가 더 많다. 그 어정쩡함은 언어로 딱 잘라 표현하긴 어려운 듯 하다. 어정쩡한게 당연한데 세상과 언어는 딱잘라 하나를 선택하라고 얘기하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듯 하다.


쉽게 말해서 반장선거를 하는데 영희한테 51%호감이, 철수에게 49%호감이 있는데 선거제도에 따르면 딱잘라서 영희한테 100%몰아줘야 하니까. 아니면 애초에 영희가 좋은지 철수가 좋은지 분간할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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