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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Oct 28. 2015

스멀스멀 다가오는 이미지

하이파, 이스라일 외

어느 문장을 읽다보면 보았던 풍경이 떠오른다.

구체적인 설명없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이미지들이다.



"얼핏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자기기만적 성향이 삶을 평탄하게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유난히 비관적인 성격 탓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이상화하는 재능이 부족한 탓이 크다. 그래서 세상과 자신의 인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점차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같은 극단적인 사실주의와는 맞지 않으며 스스로의 모습을 포장하면서 어느 정도 현실을 외면할 줄 알아야 만족감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어떻게 반전을 이끌어낼 것인가>, 크리스티안 안코비치, 86p

하이파, 이스라엘

지중해를 바라보는 철봉이 있었다. 중년의 아저씨는 뛰다말고 한 다섯번쯤 턱걸이를 시도했다. 점프를 뛰어도 기껏해야 코가 봉에 닿을 정도였다.






"하여 미국 기자들은 '충분히 믿을 만한 극거에 기초해' 보도할 방법을 궁리했다. 사회과학자의 방법론 또는 인식론을 빌려왔다. 당시 사회과학계에선 유럽의 실증주의 및 미국 실용주의가 지배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우주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경험적 관찰에 의거해 지속적, 누적적으로 진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관점을 차용한 미국의 기자들 앞에 새로운 임무가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신뢰할만한 근거Reliable news source를 찾을 수 있을까? 소문, 추정, 루머 따위에서 벗어나 사실의 확실한 근거를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직접 가서 보고 듣고 겪으면 된다,고 미국 기자들은 생각했다. 관찰, 그것도 지속적이고 예리한 관찰. 경험, 그것도 직접적이고 생생한 경험. 이것이야말로 독자에게 전해야 할 사실성Factuality의 가장 확실한 근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것은 통계적 방법론으로 나아간 실증주의 사회과학과는 다소 거리를 둔 접근이었지만(어떤 면에서는 참여관찰을 앞세운 반실증주의적 방법론에 가깝지만),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갈망했던 '과학의 시대'가 낳은 산물인 것은 분명하다.

이로부터 르포르타주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들은 전쟁, 혁명, 재난, 빈곤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오늘날까지도 세계 3대 르포르타주로 불리는 <세계를 뒤흔든 열흘>(존 리드), <카탈루냐 찬가>(조지 오웰), <중국의 붉은 별>(에드거 스노우) 등이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다.

미국 언론의 이런 기풍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한국에서 기자를 꿈꾸는 이들은 논술, 작문, 상식 시험을 준비하여 언론사 공채에 응시한다. 미국에서 기자를 꿈꾸는 이들은 세계 곳곳의 분쟁, 재난 지역에 달려간다. 취재하여 르포를 쓰고, 이를 언론사에 원고료를 받고 제공한다. 현장을 누비는 자유 기자free lancer의 이력을 착실히 쌓아 정규 기자staff reporter에 도전한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및 대부분의 서구) 기자들은 (소속 언론사가 어디건, 소속된 언론사가 없어도)끊임없이 자신의 노작을 책으로 낸다.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세계의 현장은 오직 그 기자만이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객관성의 진정한 기치다. 격동한는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겪어야 사실을 제대로 충분히 풍부하게 보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객관성의 진짜 힘이다. 


한국 언론에는 그런 풍토와 전통이 없다. 한국의 기자들은 백발을 휘날리며 현장에 달려가 생생한 르포를 내놓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런 선배 기자들을 접한 적도 없다. 한국 기자들의 '현장'은 브리핑룸 또는 기자실로 종종 국한된다. 간혹 격동의 현장에 찾아간다 해도 깊이 충분히 보고 듣고 겪는 일을 낯설어 한다. 그것은 기자의 이력에서 예외적이고 드문 순간으로 기억된다. 대신 경찰, 검찰, 국회, 청와대 등의 출입처 경력을 바탕으로 차장, 부장, 국장 등으로 이어지는 관료적 출세를 꿈꾼다."

 <저널리즘>, 조 사코 - (이 것은 책의 마지막에 있는 한겨례 안수찬 편집장의 글)

예루살렘, 이스라엘

꽤나 많은 기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고작 한 소대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이를 덤덤히 '통제'하고 있었다. 분노하는건 팔레스타인 사람들 뿐이었다. 기다리는 건 팔레스타인 사람들 몫이었다. 나는 한국의 신문에서 이런 풍경을 접하지 못하였음을 알아챘다.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 허연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부노보, 불가리아

눈을 뜨니 온통 눈이었다. 내려가기로 한 계획은 모두 수포가 되었다. 눈의 늪에 빠진 산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타들어가는 장작을 바라보다가, 쪼개논 장작을 집어넣다가, 다시 바라보다가, 커피나 홀짝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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