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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Nov 18. 2015

취해라

파리, 프랑스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취해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무엇이든, 당신 마음대로."
- '취해라', 보들레르  




이 골목의 오후를 지나면서 나는 어둠이 짙어졌을 때 이곳을 다시 찾기로 마음먹었다. 몽마르트르의 밤을 휘적이다 다시 찾은 이곳엔 이미 중년의 사진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몇 분이면 지나가겠지 하며 옆에서 기다렸으나 사진가는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혹시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압박'을 주면 잠시라도 공간을 내어주지 않을까 하며 사진가의 뒤로 가서 똑같이 연석선에 앉아있었으나 사진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진가는 취해있었다. 골목의 풍경에. 그것을 담는 사진에. 나는 거진 삼십 분을 기다렸다. 그러다 이내 저 사진가가 있는 풍경과 없는 풍경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나는 똑같은 자세로 사진가가 담긴 골목을 담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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