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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환희 Nov 09. 2015

책이 나온지 일 년이 흘렀다

유럽을 여행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유환희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의 민낯을 만나다'


내 책 <유럽을 여행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 출간된지 어느덧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책은 유럽 히치하이킹 여행을 담고 이를 소개하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책을 쓸 때 가장 크게 고민한 것은 독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책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히치하이킹 여행에서 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것이 달라졌으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이십 대 중후반의 내가 나에게 답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선포와도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 이를테면 사십 대의 나에게 "어떻게 살고 있느냐?"라고 묻는 행위와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책에 썼던 배움을 온전히 실천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될까, 안 될까? 할까, 말까? 이렇게 들면 잘 보일까? 여기보다 더 좋은 데가 있을까? 거절당하면 어쩌지? 이상한 놈으로 보는 건 아니야? 좀 창피한데……. 브뤼셀 외곽 고속도로 진입로에 들어선 나는 지나가는 차를 보며 몇 번이나 망설 무작정 다가가 다짜고짜 물었다. “Hi. Are you going to go to Gent?” 그렇게나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망설이던 히치하이킹인데, 첫 번째 시도에서 순조롭게 성공하다니……. 안도감과 함께 내 마음속을 짓눌렀던 그 망설임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간의 삶에서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망설이다 포기한 것들이 함께 일렁였다. 이를테면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한 채 지나가버린 풋사랑 같은 것들 말이다. 되고 안 되고는 시도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 p28

- 내 블로그의 명칭, 그리고 내가 쓰는 아이디는 GoDoThink이다. 이 GoDoThink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생각이 많으면 가지도 하지도 못하게 된다. 일단 가고 하고 생각하면 더 밀도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좋은 것이지만, 행동이 전제되지 않은 생각은 대개 끝없는 걱정과 망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기  전부터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나는 히치하이킹 여행의 시작에 '될까, 말까'를 고민하며 길가를 어슬렁거렸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방황의 늪에 빠졌던  듯하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그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해결되었다. 그때의 교훈은 이후 히치하이킹 여행을 하는데 아주 건강한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나는 생각이 앞서는 사람인가?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인가? 내가 끙끙대는 것은 어디에 방점이 찍힌 것인가?




그의 변화를 보며, 이번 여행에서 계속 품고 있었던 질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나를 스쳐 갔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이었던가? 인간관계가 본질적으로 주고받음을 기본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면 지금의 나는 제대로 된 관계를 다져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받는 것에만 익숙해서 아무것도 나누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여행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 p67
하루에 같은 사람의 다른 차량을 각기 다른 지역에서 히치하이킹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실로 놀라운 인연이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우연한 만남들에서 이처럼 특별한 인연을 느끼다 보니, 그냥 스쳐 지나가는 듯한 사람들에게도 성심성의껏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 나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과연 진심으로 다가갔는가. 
- p61
나는 언제 그렇게 친구를 많이 사귀었느냐고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다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야."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알리는 마치 그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존재인  듯했다. 하루는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오늘은 어떤 특별한 사람을 만났어?" 하고 물어보기에 내가 "박물관에 갔으면 열심히 전시품 구경이나 해야지, 무슨 사람을  만나?"라고 반문하자, 그는 "온종일 돌아다녔는데 특별하게 기억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단 말이야? 그건 좀 허무한데......." 라며 나의 관점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오늘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 중에 특별한 사람은 없었을까? 카페 점원의 표정이 어떠했는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 아이들은 왜 웃고 있었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먼저 다가가 살갑게 말을 걸거나, 당신의 하루는 어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알이와의 대화가 항상 편안했던 건 그가 보이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다. 대화를 이끌어주는 건 현란한 말주변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이다. 작은 배려를 놓치지 않는 것.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지 찾아내는 것.
- p160

-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 여행을 선택했다.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이동과 숙박을 사람을 만나는 기회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동은 히치하이킹으로 숙박은 카우치서핑으로 임했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명의 낯선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과정 속에서 불편한 점도 분명 있었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속에서 개개인의 이야기가 특별하다는 사실과 관심과 관계를 통한 스스로의 성장에 대해 배워나갔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있다. 이 여행 이후에 떠난 몇 달간의 다른 여행에서는 다른 사람을 계속 만났으나, 한국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나에게만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먼저 나서서 사람을 만나야 배움에도 쉽게 몸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치듯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관계를 다져나가는데 있어서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여행에서의 나와 일상에서의 나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 것은 아마 이 부분이 가장 클 것이다. 




우리는 종종 집단이라는 이름 뒤에 숨곤 한다. 그 안에서 편안함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의 긴 그림자는 어둡고 아늑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집단에 맡기거나, 혹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숨을 죽인다.(...) 어쩌면 가장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까지 직시할 줄 아는 것. 주류가 되는 것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가 되어서도 내가 주류이기 때문에 행하는 폭력을 고민할 줄 아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는 진정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일원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p200

- 나는 나를 직시하고 있는가? 세계 시민으로서 떳떳이 서 있는가?




나는 쓰레기 더미가 즐비한 길을 걸으며 그간의 경험들을 떠올렸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개 양극의 인상으로 남아 있다. 돌을 던지거나 때리고 도망가거나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나에게 술과 밥을 권하거나 귀여운 아이를 품에 안겨주거나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몹시 차갑거나 따뜻했던, 양극단의 기억이 함께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순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예절과 질서를 지키고, 그에 맞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도록 요구받고 교육받는다.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되고, 내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보단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감정은 그대로 꺼내 보여야 할 본능이다. 예를 차리기보단 꾸밈없이 사람을 대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가 그들의 공간에서 위협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차이 때문이 아닐까. 이 선은 넘지 말아야 하는데 쉽게 넘어와버리고, 그 감정은 담아둬야 하는 것인데 망설임 없이 바로 표현해버리니 말이다. 그 속에서 생긴 오해와 편견으로 그들을 규정짓고 내 스스로 울타리를 친 것은 아니었을까?
- p311 
"히잡은 머리를 감싼 것이지, 생각을 감싼 것은 아니야. 히잡을 하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 생각대로 살아갈 수 있어."

그녀는 종교 때문에 자신의 삶이 제한되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가정은 유별나게 보수적이지도 않았고, 그녀 스스로 히잡이 성차별적인 업압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굳건한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는 수단 같았다. 기존의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다. 힐랄과의 대화를 계기로 앞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판단의 잣대를 문화와 종교가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들이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p326

- 나는 편견을 깨고 있을까? 편견 속에 머물러 있을까? 나는 말랑말랑한 뇌를 가지고 타인의 생각을 귀담아 듣고 있는가? "이 사람은 말이 안 통해"하며 내치고 있진 않은가?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안에 커가는 아집을 보았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고, 늘 먹던 것만 먹고, 늘 하던 대로 행동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좀 더 안정적이고 나은 삶을 보장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히치하이킹과 카우치서핑만으로 여정을 꾸린 이번 여행을 통해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또 다른 긍정적인 면을 보았습니다.

히치하이킹만으로 여정을 꾸리는 것은 매 순간을 불확실성에 기대는 것입니다. 목적지조차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낯선 이의 차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즐거운 일만 생기면 좋을 텐데, 결국은 모두 확률의 일인지라 싫어하는 일, 아픈 일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희미하게 '좋은 삶', 그리고 '좋은 사람'에 대한 답변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불안했지만 그 불확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상황과 신선한 만남들은 보다 크고 다양한 삶의 가치를 보게 했습니다.

제가 느낀 '좋은 삶'은 행복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사진 한 장을 위한 기다림,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 있는 여유, 골목길에 선 길고양이에 주는 눈길, 해질 무렵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 들어보지 않았던 밴드의 앨범, 관심 없던 분야의 책,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가능성을 조금씩 열어 삶의 범주를 넓혀 가는 것.

이와 비슷하게 '좋은 사람이 되는 길' 역시 감당해야 할, 책임져야 할 것의 범위를 넓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 좋은 것뿐만 아니라 고통, 슬픔, 우울, 권태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품을 수 있는 것, 나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쏟아지는 것까지, 그 모두를 말입니다. 
- p11 프롤로그

- 불확실을 즐겨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책임의 범위를 넓혀 좋은 사람으로 살아라.

고백하건대, 십오 년  후는커녕 여행 후 일 년 동안에도 나는 책에 썼던 배움과 다짐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여행 중 꾸려나갔던 삶만큼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상을 살아내지도 못했다. 말과 글, 글과 행동의 괴리 안에 내가 있었다. 그 간극은 점점 벌어진  듯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책을 다시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성장한 내 모습도 마주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삶의 처지들을 이제는 조금 더 깊이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껍데기와 욕망에 대해 더욱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불필요한 듯 보이는 삶의 조각은 시간이 흐르면 어딘가에 꼭 필요한 퍼즐 조각으로 맞춰지게 되는 법이다.





# 재작년 이맘때의 나는 동유럽 길 위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102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프라하 외곽 고속도로
사인카드에 브르노와 브라티슬라바를 모두 적었다. 브르노는 프라하와 브라티슬라바 사이에 있는 도시다.
책을 보며 기다리다 눈 앞에 슬로바키아 번호판을 단 차가 딱! 나타났다.


# 작년 이맘때 나는 <유럽을 여행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을 출간하였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로 가기 위해 프라하 외곽 고속도로 휴게소로 향하는 길엔 포근한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여름에 시작한 이 여행이 어느덧 완연한 가을의 끝 무렵에 이른 것이다. 그간 짐을 늘리기 싫어 반판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곳들만 골라 찾기도 했는데, 이제는 조금 시린 듯한 가을바람에도 완연히 익숙해졌다.

계절이 뒤바뀌는 대목에선 짐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나 역시 두툼한 스웨터를 한 벌 사야만 했다. 새 스웨터를 사면서, 배낭에서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여행은 버림의 여정이다. 출발부터 그러하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 가장 고민이 되는 건 무엇을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버리고 가느냐이다. 이것저것 다 필요해 보이지만,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반드시 버려야만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어떠한가. 지도 위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는 수많은 곳들을 놓아줘야 한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내가 차근차근 이룩한 것을 기꺼이 포기해야만 한다. 안정된 삶, 또 다른 기회, 그리고 나를 이루는 수많은 관계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설 수 있다. 여행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이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 아름다운 사진을 하나씩 걷어내고, 가장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버리고 또 버렸는데도 걷다 보니 가방이 무거웠다. 아직도 뭔가에 미련이 남았나 보다.
- p223


1. 책에서 나는 '버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어는 '여행'이었지만 삶으로 치환해도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내 삶을 둘러싼 다양한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2. 임제 스님은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3. 주인으로 산다는 것, 내 삶을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버림의 여정이기도 하다. <유럽을 여행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라는 책, 3년간의 세계여행,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에서도 버려야 할 것은 존재한다.


4. 배움은 배움으로, 깨부숴야 할 것은 깨부수며, 행동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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