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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todo Nov 26. 2023

좋은 연기에도 좋은 기분 들지 않는 양가적 감정의 영화

모순 같은 감정의 격한 요동 속에 감상한 영화 '서울의 봄'

그해 겨울밤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당시 우리집은 고양시에서 서울 도심 광화문으로 진입하는 유일한 도로인 통일로 주변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쿠쿠쿵 쿠쿠쿵' 지축을 흔드는 듯한 소리와 바닥 진동 때문에 잠에서 깨어 잠옷 바람으로 밖에 나왔다. 소리보다 진동이 더 나를 놀라게 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의 한밤중이었다. 집이 조금 언덕에 있었기에 도로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 도로 쪽으로만 가로등 불빛으로 환했고, 탱크들이 줄을 지어 시내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황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워낙 낯설었던 풍경이기에 무심한 장면만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날 그 밤을 영화로 그린 '서울의 봄'.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김성균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했고, 조연 또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배우들이 열연했다.


'이미 어두운 역사로 수십 년이 지나버린 이야기를 왜 영화로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졌다. 영화에 몰입할수록 이태신 수경사령관이 어떻게든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지만,  그럴수록 더 허무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상황 아닌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결국 전두광과 하나회 군인 일당이 반란에 성공하는 장면에서는 이미 수십 년 수백 번 보고 아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또 다시 내 감정이 격하게 요동치는 걸 느꼈다.


각 배우들이 열연했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다양한 장면 효과도 좋았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라고 하려니 뭔가 양가적 감정도 들었고, 이율배반적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황정민이 전두광 연기를 너무나 전두광처럼 해서 연기를 잘 했는데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고, 이태신 수경사령관이 너무나 소신이 있는 투철한 군인 정신을 발휘하며 연기를 잘 했는데 역시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모순 같은 감정이었다.



영화관을 나서면 이미 40여 년 지난 역사는 그냥 역사의 한 페이지로서 현실로 남아 있고, 그렇게 바뀐 나라의 운명과 민주주의는 그렇게 저렇게 흘러서 지금 이렇게 다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치가 이렇게 되고 있는데... 그게 현실인데 뭐 어쩌란 말인가. 이런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목숨 걸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상황을 주도하고 열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끌려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왜 저쪽은 교활하고 나쁜 놈들만 모여있는데 운이 따라주고, 왜 이쪽은 멍청이와 머저리들만 모여있으며 운마저 따라주지 않는가.



세상은 예측한 대로 움직이지 않고 원하는 대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우울한 느낌? 크고 작은 변수들이 우리들의 통제를 벗어나 물고 물리면서 상황이 전개될 뿐이었다.


170여 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 대부분이 젊은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에게는 이 영화가 역사적 의미를 던져주었을까, 아니면 그냥 수많은 영화 중 하나의 영화뿐이었을까.


전두환을 전두광이란 이름으로 바꾼 것은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의 작명과는 다른 방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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