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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11. 2023

고여사 일기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아라


    매일 아침 엄마는 침상 세안을 한다. 원래는 앉은 상태에서 방수포를 깔고 세숫대야 물로 세안을 하고 손을 닦았는데 올 봄부터 부쩍 기력이 저하된 후로는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닦아낸다. 이마에서부터 얼굴 전체를 닦아낸 다음 양쪽 손을 닦고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처리하며 아랫부분을 닦는다. 


  손을 닦으려다 멈칫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이 손가락에 묻었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자 대변 냄새가 확 다가온다.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은 절망을 예고했다. 이불을 젖히자 희미하게 감돌던 악취가 강하게 코끝을 때린다. 엄마가 손으로 기저귀 안쪽을 더듬었던 모양이다. 엉망이 된 기저귀 안에는 변과 피가 범벅이 되어있었다.


  닦아내도 피는 계속 배어나왔다. 병원으로 모실 생각을 하면서도 이동 방법이 걱정되었다. 결국 119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는 그 상황에서도 병원 행을 거부한다.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흔 두 살 노인의 병원진료는 무의미하다. 출혈은 일시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생리식염수 링거 하나 맞고 귀가했다. 손톱에 상처를 입었을 거라는 추정만 할 수 있었다. 병원을 다녀와서 절대 기저귀 안에 손을 넣지 말라고 당부했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제 아침의 일이었다. 


  신신당부는 지우개로 지운 듯 엄마는 어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만들어놓았다. 손은 물론 이불과 패드, 옷과 몸에도 똥칠을 했다. 침대와 맞닿은 벽에까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더 이상 이성적이지 않았다. 나는 절대 알지 못할 이유로 기막힌 상황을 만들어 낸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 동안 속이 상할 때면 동생들에게 하소연 한번 하고 넘겼는데... 큰소리로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 몸에 묻은 배설물을 닦아내는 동안 엄마는 아프다고 몸을 비틀었다. 짙게 풍겨오는 냄새가 불안한 내일 아침 풍경으로 예고하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몸을 닦고 기저귀를 간 다음 엄마를 안아 옮겼다. 침구를 모두 벗겨 교체한 후 다시 자리에 눕히자 이번엔 내 허리가 아파온다. 삐끗한 모양이다. 아침이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으면 좋으련만 어쩌자고. 불쾌함을 견디기가 힘들겠지만 이성의 끈을 잡고 있었더라면 딸이 오는 시간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당신 손길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을 테니까. 


  오래 살라는 말 중에 농처럼, 혹은 비아냥대며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아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말은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될 저주라는 생각을 했다. 더러 치매 노인들 중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모습을 직관한 가족은 억장이 무너진다. 결코 마주하지 말아야 할 장면이 그 모습이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모시고자 했던 다짐이 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내일 아침이 걱정되어 세 시간 단위로 기저귀를 갈기로 했다. 적어도 자정까지는 그리할 생각이다. 그런데 식사를 거부하다 겨우 죽 한술 뜬 엄마가 물을 찾는다. 그것도 시원한 냉수를 달란다. 기저귀 가는 틈보다 더 자주 물을 찾는 통에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급격히 저하되는 엄마의 증상을 보며 두려움이 생긴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늦지 않게 시설로 모시는 게 나을까? 


  푸른 물감으로 바탕을 그려둔 10호짜리 캔버스를 이젤 위에 세웠다. 아래쪽 삼분의 일은 초록을 섞었었는데 나이프에 검정 물감을 묻혀 경계가 흐릿한 수평선을 그었다. 실수로 떨어진 검은 물감 위에 양을 덧발라 바위섬을 그렸다. 흰 물감으로 윤슬을 긋는다. 계획대로면 캔버스 중앙에 샛노란 해바라기를 그려야 하는데 아직 노랑 물감을 짜지 못했다. 아주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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