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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17. 2023

고여사의 일기

마지막 일기

  식사 때가 되자 상 두 개를 편다. 엄마가 떠났는데도 나는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자 엄마의 밥상 다리를 접어 냉장고 위로 올린다. 그냥 두면 또 다시 두 개를 다 펼 것이다. 


  책을 보다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문득 엄마 방에 가기위해 벌떡 일어난다. 기저귀 갈 시간, 혹은 물을 찾지나 않을지 하고. 방문을 나서기 전에 엄마의 부재를 인지하고 다시 돌아서거나 텅 빈 방으로 가서 서성거린다. 엄마는 잘 버티고 있을까?


  내일 오전에 면회신청을 했다. 사실, 엄마가 울거나 원망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아프더라도 치료받지 않고 집에서 그냥 죽게 해달라던 엄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에 오히려 의문을 품었다. 다 늙었는데 곡기를 끊어 죽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자식 생각은 안하냐고 역정을 내면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돌리던.

 

  이불의 네 모서리를 반듯하게 펴서 정리를 하고서야 자리에 눕던 엄마였다. 이불은 침대위에 둘둘 말린 채 주인을 떠나보냈다. 이불깃을 정리하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아프면서 표현도 못하고 혼자서 앓았었다는 걸 보여준다. 


  문을 열자, 베란다에는 뜨거워진 햇살에 제라늄들이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다. 엄마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끝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저토록 고운 빛깔의 꽃잎을 보는 것이 버거웠을까. 미련을 접으려는 노력이었을까? 


 *  엄마는 또 다시 집을 떠났습니다. 이제 고 여사, 고(高)자, 신(申)자, 생(生)자를 이름으로 가진, 쓰고 보니 참 성의 없는 이름이네요. 제주 고씨, 원숭이띠 해에 태어난 엄마의 일기는 여기서 접어야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띄엄띄엄 면회 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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