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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n 08. 2023

최여사의 일기

나들이-치매안심센터

   치매안심센터에 근무하는 친구가 여러 권유를 했었지만 어머니와 동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며느리와 단 둘만 외출하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가족이 등록을 대행할 수 있지만 어머니의 호적엔 시대적 관습의 희생으로 가족이 기재되지 못했다.


  ‘치매’라는 단어는 어머니와 관련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당신이 치매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머니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내게 퍼부을 수많은 한탄을 감당할 자신도 없어 비밀에 붙인다. 친구가 사회사업을 하는데 아흔이 넘은 할머니들에게 선물도 주고 함께 놀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구경도 하고 바람도 쐴 겸 다녀오자고 했다.


  보건소 부속으로 설치된 ‘치매안심센터.’ 전화로 미리 방문사실을 알린 덕분에 친구가 휠체어를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월, 수, 금에 시행되는 치매관련 교육프로그램은 장기요양서비스와 중복하여 지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치매키트’를 포함한 조호물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욕창방지방석, 이름표, 영양제, 위생패드, 방수패드, 기저귀 등 지원물품은 아주 다양하고 양도 꽤나 많다. 원래 계획했던 프로그램 참여가 물거품이 되어 아쉬움이 크다. 


  집을 나선 김에 바다구경을 권했다. 포항의 랜드마크인 포스코는 오가는 길에 구경을 한 샘이니 ‘송도해수욕장’이 보고 싶단다. 사십 여 년 전에 놀이를 다녀간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모래사장과 소나무를 언급했다. 그 넓은 모래사장이 모두 소실된 것을 아신다면 서운해 하실까? 해변도로에 차을 세웠다. “아이고, 바다네.” 거울처럼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길게 포스코가 방파제처럼 보이고 왼편으로 멀리 영일대해수욕장과 환호공원이 바다를 감쌌다. “여기가 송도가?”


  강산이 네 번은 더 변했을 터인데 예전이랑 같을 수는 없지 않겠냐고 둘러댔다. 모래언덕에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넓은 모래사상이 펼쳐졌던 옛 송도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어머니는 기억의 저편에서 소나무 그늘 아래 음식을 펼쳐놓고 바다를 즐겼던 그 때로 가 있었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 희미한 눈매가 더 가늘어진다. 


  “바다가 육지라면....” 음정 박자 무시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뒷자리에 앉아 노래를 시작한 어머니는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지 한 마디만 반복한다. 송도 끝자락에 남은 송림을 지나며 소나무 숲이라 알려드렸지만 이미 어머니의 송도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훗날, 송도 바다를 찾은 내 모습이 상상으로 다가온다. 낯선 송도바다. ‘바다가 육지라면,’을 반복하여 읊조리는 내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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