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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l 01. 2023

최여사의 일기

합가

  늙으면 아이가 된다더니, 

친정엄마가 떠나신 후 시어머니는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칭얼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보니...’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더 이상 혼자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늙은이가 혼자 이 넓은 집을 차지한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랍니다. 당신만 없으면 월세를 놓아도 좋을 터이고, 당신 수발을 위해 며느리의 발을 묶어 놓는 것도 또 다른 손해라네요. 그것만 아니면 연년생 아기들을 대신 돌봐주어 육아휴직 중인 당신 손자가 복직할 수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밤새 천정의 벽지 무늬를 따라다니며 세상 모든 일들을 파헤친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듣다 못해 여쭈었더이다. 어머니는 주저리주저리 읊던 손해론 설파를 멈추더니 시골집에 데려다놓으랍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떠나온 시골집 생활에 다시 자신이 생긴 모양입니다. 아파트에서의 생활과 시골집에서의 생활은 차이가 큽니다. 말끔하게 정돈된 아파트는 엉덩이로 기든, 엎드려 기어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습니다. 문턱도 거의 없으니 기는데 장애도 없지요. 두 해 정도의 아파트 생활이 익숙해지자 시골 생활을 잊은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골집은 나무와 흙으로 지은 일자형 주택에 군데군데 리모델링했습니다. 아궁이가 있는 부엌, 그 옆으로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었고 방앞에는 쪽마루가 길게 놓였었습니다. 그 아래 한 자 높이의 죽담이 있었고 텃밭이 되어버린 마당이 있었는데 흙을 돋아 쪽마루와 죽담을 헐어 거실로 만들었지요. 집 안방과 거실의 높이 차이가 두 자는 족히 넘고 방문턱도 한 뼘은 넘습니다. 주방에 싱크대를 넣어 현대식이라고는 하지만 무척이나 어설픈 형태랍니다. 헛간 자리에 욕실을 만들어 양변기를 설치한 것이 가장 나중 일이지요.


  종종걸음의 어머니에게 층층이 높이가 다른 공간과 그 공간들을 구분 짓는 문턱은 무적해병의 유격훈련시설 만큼이나 고난이도에 해당합니다. 방에서 나오다 거실로 떨어지고 다시 부엌으로 기어오르기를 반복하는 일은 고역이었고,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서다 문턱에 걸려 흙바닥으로 슬라이딩한 날에 울먹이며 데려가라 연락했었습니다. 살기 편하게 수리하려면 아예 헐고 지어야 했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재건축은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아흔 둘 어머니의 독거는 유기에 해당되겠지요. 


  남편이 나서서 어머니의 심중을 떠보았습니다. 예견한 일이지만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 했습니다.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이러 저리 둘러댔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어 합가를 제시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며느리한테만은 잔소리를 하게 해 달라던 어머니로서는 아주 큰 결심이었네요. 육이오 73주년 경건한 묵념이 있던 시간에 어머니는 간단한 짐을 꾸려 아들이 사는 집 문간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지내던 방입니다.


  자리를 깔고 잠시 눕더니 다시 일어나 걱정을 합니다. 금쪽같은 손주가 손부와 증손주들을 데리고 오면 어디서 묵냐고 물으시네요. 어머니 사시던 데로 가면 된다고 했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상을 짓습니다. 나 때문에 우야꼬... 아,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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