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나를 지키면서 성장하는 방법
일 잘하는 실무자가 되고 싶어요.
밥벌이 8년 차, 마케터의 일상
2021. 11. 9 화요일 10:30 구글 밋 화상 미팅
"환희님은 잠깐 저랑 좀 더 얘기해요."
매일 오전 진행되는 구글 밋 스크럼이 끝나갈 무렵 그룹 리더가 1:1을 요청했다. 그동안 1:1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덜컹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지?' '얘기 좀 해요'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나란 인간은 극 소심한 INFP다.
"파트 리더를 환희님이 해보는 건 어때요?"
순간 당황했다.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2년 전 고통 of 고통의 팀장 경험 이후 어떤 식으로든 리더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처럼 인원이 많지 않고 세부 직군이 섞여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내가 소속되어있는 파트만 책임지는 일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와서 이전 히스토리를 환희님이 가장 잘 알고 있잖아요. 다른 파트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환희님이 잘 챙겨주고 해서 잘할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바빠서 하나씩 들여다보기도 힘들고...."
"조금 더 고민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고민해 볼 시간을 딱 하루 받았다.
어느 정도 내가 잘하는 일이고, 좀 더 잘하고 싶은 일이 현재의 전사 프로모션 기획/운영 업무다. 리더가 되면 담당 실무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라 실무도 하면서 전체적인 마케팅 플래닝을 챙기고 구성원들을 관리해야 한다. 더불어 끊임없이 채용도 해야 하고 구성원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내가 잘 모르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공부해서 솔루션을 제안해줘야 한다.
즉, 절대적으로 시간이라는 리소스를 더 많이 할애해야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만 더 그릇을 넓히면 될 것 같은데...'
다만, 내 성격상 뭔가를 맡으면 책임감이 이라는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제대로 해내고 싶은 생각에 시간과 노력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이게 될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회사 밖에서의 활동을 못하게 된다.
요즘 가장 신경 쓰고 생각하는 가치이다. 단순히 '워라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단순하게 들려서 워라밸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가 않다. MZ 세대들은 워크 라이프 블랜드라고 얘기하기도 하던데... 리더를 하게 되면 블랜드가 아니라 아예 내 삶이 다시 없어질 것이다. 뇌구조가 100% 일로만 가득 차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균형을 지켜야 어느 한쪽이 와르르 무너지더라도 삶을 지탱해 낼 수 있다.
사실 다 잘하고 싶다. 일도 잘하고 싶고 운동도 잘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고 투자도 성공해서 넉넉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현재 회사에서만 일을 잘하고 싶은 게 아니고, 업계 상황이나 트렌드에도 더 많은 시간 투자를 하고 싶다.
뭔가 하나에 매달려서 울고불고 스트레스받고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저 즐길 수 있고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열정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싶다. A가 안되면 B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또 보람은 C에서 느껴도 되고... 쿨워터 향 나는 사람처럼 살아보련다.
예전에는 무조건 열심히 다 쏟아부어서 노력하는 기조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쌓이면서 때론 내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잘 될 수도 반대로 잘 안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적당한 집착과 적당한 몰입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대충 일하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예전에는 중요할 결정을 할 때 남들의 의견을 굉장히 많이 수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삶을 추구하고 싶은지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꽤 쉽게 고민을 끝냈다. 하루 만에 답변을 드렸다.
"저는 일 잘하는 실무자가 되고 싶어요. 현재 파트 구성원으로 제 프로젝트를 타 직무와 협업해서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큰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저보다 경험이 많아서 업무적으로 많이 배울 수 있는 분이 제 위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리더 채용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잘 서포트할게요!"
내 성격이 이상한 건지 일반 구성원일 때 좀 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고 아이디어를 쉽게 던진다. 반대로 감투를 쓰게 되면 그 압박감에 팀원들을 대하는 자세도 부자연스럽고 스스로 경직된다. 당분간은 그저 협업 잘하고 아이디어 잘 던지는 일반인으로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구성원으로서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내는 게 이상하게 더 재밌다.
내가 믿는 가치관대로 사는 게 좀 더 행복해지는 길이니까. 지금이 좋으니까. 지금이 좋으면 굳이 변화시킬 필요는 없다. 모두가 승진 기회를 잡을 필요는 없다.
리더가 되지 않아도, 승진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 내 일에 좀 더 몰입하고 싶으니까. 집중하면 내 삶의 만족감이 더 커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