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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한 사랑방 Jun 30. 2023

나의 엄마, 나는 엄마

18개월 된 아기의 엄마이자, 여전히 떠난 엄마의 품이 그리운 나는 엄마


엄마라는 두 글자에 먹먹해졌다가 아쉬움이 밀려오던 나는 세 살베기 아들의 엄마다. 그리고 엄마가 되니 엄마의 사랑이, 엄마라는 존재가, 엄마의 지난 삶이 더 선연하게 다가온다. 올해로 엄마가 돌아가신 지 꼬박 12년이 되었다. 나의 엄마는 넘치는 사랑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호되게 혼을 내시는 일이 많으셨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건강하게 사 남매를 악착같이 키워낸 여장군이기도 했다. 세상 강인하던, 늘 함께 할 줄 알았던 엄마는 점차 병마와 싸우며 시들어져만 갔다.


그녀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꼭 전해야겠다는 말투로 진심으로 사과하셨다. 먹고살기 벅차서 그땐 말 안 듣는 너희에게 너그럽지 못했다고, 자주 매를 들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고백하시며 엄마는 복받치듯 서럽게 우셨다. 그런 엄마보다 더 크게 울며 서로 부둥켜 끌어안았다. 그렇게 지난하게 사 남매를 키워낸 그녀는 얼마나 힘드셨을지. 그리고 앞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고백하시던 그 미어지는 마음은 어땠을지, 무엇보다 자식을 뒤로한 채 먼저 가야 하는 야속한 현실에 얼마나 비통했을지. 이제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그 서럽고 비통했을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엄마가 되어서도 엄마가 그리운 나는 엄마다. 



형제자매가 많아서인지, 내 기질인지 나는 어린 시절 엄마의 관심에 목말라했다. 엄마는 동네에서 한식당을 운영하셨는데, 언니 둘은 뒷마당에 아빠가 만들어주신 그네를 타거나, 팩게임을 하며 둘이 잘 어울려 놀았다. 나는 어리다며 놀이에 잘 껴주지 않는 언니들을 뒤로하고 주로 엄마 식당에 나와있었다. 그때는 엄마를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엄마와 함께하고 싶었던 마음 같기도 하다. 손님들이 붐비지 않는 한가한 시간이면 손님 테이블에 앉아 엄마가 한글 공부를 봐주셨다. 틀렸던 받침을 또 틀리고, 반복해도 자꾸 틀리는 단어에 버벅댈 때 다정하게 알려주시는 엄마가 너무 좋았다. 그런 엄마와 단 둘이 있는 시간. 엄마가 다른 가족도, 손님도 아닌 나만 오롯이 봐주시는 시간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그러다 식당문이 활짝 열리며 손님이 오시면 엄마는 ‘어서 오세요’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찬물 끼얹듯 방해한 손님이 야속해서 입을 삐쭉 내밀며 엄마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아득하게 먼 기억이지만 어린 시절 손님이 빠진 테이블을 치우며 엄마의 식당일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있다. ‘혼자서 정신없이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손님 빠진 상을 미처 치우지도 못했는데, 그 어린애가 고사리 손으로 그릇을 몇 개씩 날랐는데 어느새 보면 혼자서 큰 손님상을 다 치웠더라고’ 하시며 몇 번을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 엄마는 나의 착한 심성을 칭찬한 말씀이었지만, 어쩌면 나는 그렇게 엄마를 도와서 빨리 함께하고 싶었던걸 지도 모른다. 오롯하게 엄마의 관심을 받으며 사랑을 느끼고 싶어서였을지도. 이를 들어줄 대상(엄마)이 없으니 케케묵은 낡은 이야기,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채워지지 않았던 관심과 사랑을 줄곧 외부로부터 찾아 헤맸다. 더 강하게, 더 짙고 선명하게 채워줄 타인과 경험들을 갈구했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운명처럼 어쩌면 천운처럼 지금의 반려인이 나타났다. 반려인에게는 그동안 다른 이들에게 하지 못했던,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선뜻할 수 없었던 어둡고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엄마를 향한 나의 어린 시절 감정들을 털어놨다. 그때 그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의 무거운 과거 이야기를 듣고 ‘나! 내가 할래! 내가 해줄래. 그 사랑 내가 채워줄래. 내가 하게 해 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어떤 다정한 위로의 말보다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꼴이지만, 보듬고 이해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고 상응하며 사랑을 키워갔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내 안에도 목마름으로 남아있던 ‘받는 사랑’의 허기를 자주 잊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가 생겼고, 아이의 탄생 이후 '주는 사랑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사랑을 마구 내어주지만 내 안은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 차는 나날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사랑의 허기가 이 작디작은 아이를 보자마자 채워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사랑은 내 안에서 샘 솓으며, 나는 이미 사랑이며, 어떤 조건 없이도 나는 온전하다는 믿음. 그 굳건한 믿음으로 좋은 사람들 곁에서 하루하루 안온하게 살아간다. 나의 둥지 나의 원천 나의 근원, 나의 집 안온한 사랑방을 가꾸며 살아간다. 시계를 보니 아이가 어린이지에서 하원한 시간이 되어간다. 이제 보슬보슬 맛난 밥을 지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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