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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한 사랑방 Jun 30. 2023

넌 절대 흰 옷을 사주면 안 되겠어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줄곳 자라왔다. 말 그대로 주변은 온통 산 뿐이었는데, 정말이지 산과 들, 강을 벗 삼아 쏘다니기 일쑤였다. 친한 동네 여자 친구 2명이 있었는데 허구한 날 둘을 불러내어 산으로 개울로 향했다. 주 놀이터는 친구네 집 뒷산이었는데 친구네 할아버지께서 일구시는 물고기 양식장과 양봉장을 지나야 했다. 뒷산에 오르기 전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넋 놓고 구경하곤 했다.


내가 어릴 적 정말 괴짜였구나 느끼곤 할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뒷산을 오를 때 잘 닦여진 등산로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 우리 커닝하지 말자. 우리가 개척해서 가자” 이렇게 외치며 두 친구를 데리고 나뭇가지와 풀이 무성한 길을 헤치며 산을 올랐다. 그렇게 험한 산을 셋이 올라 산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동네를 구경했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내려오다 운동화 밑창이 뜯어지기도 했고, 체육복 바지나 티셔츠에 구멍이 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내려오다 미끄러져 무릎과 손바닥이 쓸리는 날도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면 ‘우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하고 흩어졌다. 해가 긴 여름철에는 친구네 어머님이 “명래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뒷산과 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질 때 헤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특이점은 우리 중 누구도 손목시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겁도 없고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싶다. 큰 사고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지금까지도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하는 추억거리다.



 이런 유년 시절을 보내다 보니 나는 늘 까맣게 피부가 그을렸고, 그나마 겨울이 돼야 조금 하얘졌다. 지나칠 정도로 깔끔을 떠시던 엄마는 그런 나를 참 못마땅해하셨다. 흰 옷을 사주면 어디서 묻었는지도 모를 얼룩들에 엄마는 늘 내 빨래에 애를 먹곤 하셨다. 그래서 “너는 절대 흰 옷을 사주면 안 되겠어 ‘ 하시며 사내아이처럼 드세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그럴 만도한게 나 빼고 집안에서 엄마와 언니들은 모두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웠다. 나 혼자 늘 까맣고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었다. 나는 자연을 누비며 정말 즐겁게 놀았다 생각하며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내 몰골을 본 엄마는 늘 기겁하시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놀다 왔길래 이러냐며 얼굴을 구기셨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마음이 초조했고, 신이 나서 총총 걷는 걸음도 점차 무거워졌다.


  지금 크고 보니 엄마가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 내가 보낸 하루가 어땠는지 왜 한 번도 물으시지도, 들어주시지도 않으셨을까 하는 서운함도 공존했다. 그 시절 나는 엄마의 걱정과 염려보단, 나의 작지만 굉장한 도전이나 경험담 따위를 들려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친구가 나한테만 편지를 안 줘서 서운했는지, 주말에 있는 친구 생일파티에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할지, 아니면 내가 자전거 시합에서 이겼다던가 하는 시시콜콜하지만 나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거나 덜어내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엄마의 걱정의 눈빛은 늘 날카로웠고, 염려의 목소리는 늘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타인의 비언어를 잘 살피고 잘 파악하던 나인지라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그 비언어에 괜히 먼저 짓눌렸던 거다. 내가 입었던 하얀 옷은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보다, 이걸 어떻게 빨아야 지워지려나를 먼저 생각했던 엄마의 눈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내 기억에 선연하게 남아있다.     



 여기서 또 들었던 의문은 그때 왜 나는 엄마에게 ’ 엄마 일단 제 얘기 좀 들어봐! 그때 정말 아찔했다니깐 ‘ 하며 시시콜콜 내 얘기를 늘어놓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둡게 굳은 상대의 얼굴이나 날카로운 눈빛에 자주 눈치를 보곤 했다. 그럴만한 일이 있겠거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겠지 하며 한 발 물러서서 기다릴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그게 나 때문인가, 내가 뭘 잘못했나 하면서 눈치만 보다 이내 주눅이 든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엄마 눈치를 보던 버릇에서 기인한 건 아닐까 하며 그 시절 어린 내가 애틋해서 한동안 열병처럼 앓았던 때도 있다. 엄마한테 관심받고 싶었구나, 엄마에게 신뢰를 얻고 싶었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그 시절 어린 나를 마구 보듬어주었다. 세상 무겁게 짓누르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도 그 시절 애틋한 내면 아이를 가끔 마주한다. 햇볕에 그을리고 깡마른 아이. 하지만 눈빛이 순수하고 당차던 아이.      

 그 시절도 지금도 내가 흰 옷을 입든 안 입든, 옷이 더러워지든, 말끔하든 나는 있는 그대로 나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든, 신뢰하지 않든, 애니웨이.


나는 이미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매 번 되뇐다.           

서른이 훌쩍 넘었지만 때때로 여전히 쉽지 않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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