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편
군대에 있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였지?'
'내가 입대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오고 있었지?'
2020년에 입대해 약 2년 동안 군인으로서 살아왔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하기 싫은 일을 어영부영하면서 살다 보니 어느샌가 민간인이 되어있었다.
군대에서 나는 통신병이었다. 전화기, CCTV, 컴퓨터, 스피커, 방송장비 등을 고치는 임무를 맡았다.
사회에 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내가 전공을 한 사회학과는 이쪽 분야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을뿐더러 전기, 전선을 만지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일을 배워야 했고, 작업을 능숙하게 잘 처리해야만 했다. 이것이 군인으로서 내가 맡은 임무고,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곳이 군대였다.
그렇게 군생활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군복을 입을 때마다 곰인형 탈을 쓰는 것 같았다.
전역이 다가올수록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욕망이 더욱 커져갔다.
그래서 나는 전역하고 미국을 가기로 결심했다. 미국은 내 20대를 전부 바친 장소이자 내 두 번째 고향이다.
미국을 가면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침 친구 한 명이 미국에 공부하고 있어서, 그 친구와 함께 미국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미국에 5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뉴욕을 가본 적이 없었다. 뉴욕뿐만 아니라 동부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번번이 뉴욕에 가려고 할 때마다 부정적인 말들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은 한국만큼 덥다, 혹은 춥다 그리고 더럽다 등등, 뉴욕에 굳이 가볼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군대에 있을 때 뉴욕에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됐고, 결국 이번 기회에 가기로 결심했다.
미국 여행은 뉴욕-나이아가라 폭포-보스턴-엘에이 순으로 일정을 짰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뉴욕의 물가는 너무 비싸고, 환율은 1300원대로 올라서 돈이 줄줄 새어나갈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지금 가지 않으면 후회가 남을 것이라 생각했고 화끈하게 질러버렸다. 나한테는 군대에서 모은 자금이 있었으니까.
새벽에 짐을 싸면서 두근거렸다. 짐을 싸면서도 내가 미국에 다시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2년 만에 와본 인천공항은 매우 한산했다. 나한테는 오히려 북적거리지 않아서 좋았다. 참고로 6월 기준 미국으로 입국할 때 법이 완화되어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몇몇 공항은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코로나 검사를 받아놓는 것도 좋다.
솔직히, 여행을 간다는 사실과 미국을 다시 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5년 동안 미국에 살다와서 해외라는 느낌이 크게 없었고, 아무리 뉴욕이라도 내 상상 범주 내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뉴욕은 영화나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어서 새로운 느낌보다는 익숙한 느낌이 더 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3시간 비행이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인내심은 내가 군대에서 배워온 큰 장점 중에 하나이니 문제없었다. 아니,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