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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절기 Dec 30. 2021

그를 위한 변명

영화 <이터널선샤인> 속 조엘은 왜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내 과거를 이야기 하는게 두려웠다. 아니,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내 과거 때문인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내 과거를 꺼내놓고 싶다.   


 나는 연애를 꽤나 늦게 했다. 요즘이야 다들 중고등학교의 연애를 한다지만 내 주변은 보통 대학교 들어가는 스무살에 첫 연애를 했고, 나는 그것보다 한참 뒤인 스물 셋에야 첫 연애를 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물었다. 왜 연애를 안하냐고. 그때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댔지만 사실 이유는 하나다. 나는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종국을 만나기 전에 나는 스스로를 사랑이라는 레이스에서  OUT시켰다.


 나는 몸에 장애가 있다. 어린 시절 왼쪽 눈을 엄마가 부업하던 도구에 찔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있다. 지금은 의술의 힘을 빌어 크게 티가 안나지만 십대때 까지 내 왼쪽 눈동자 가운데에는 흰색 선이 그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눈다친 아이라고 불렀었다. 너무 어린시절부터 그렇게 불려와서인지 내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었는데, 내 사랑의 고백 앞에선 너무나도 큰 벽으로 다가왔다. 


고백에 앞서 ‘나 사실 한쪽 눈이 안보여.’ 라고 말하는 것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는 형은 ‘왜 그걸 말을 해? 사귀고 난 뒤에 말해.’ 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 장애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상대를 속이고 시작하는 것밖에 안되어 보였다. 그래서 매번 ‘너와 연애를 하고 싶어’ 라는 말은 호감쌓기라는 트랙을 잘 달리다가도 매번 내 장애를 고백하기 라는 마지막 장애물에 걸려 고백이란 결승선을 넘지 못했다. 


나는 영화 <이터널선샤인> 속 조엘을 보고 나의 과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보기에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만나서 연애를 한다. 심지어 이미 나오미라는 여성과 연애를 하고 있는데 동시에 클레멘타인을 만날 정도로 연애를 잘 해나가는 것 같아 내 과거와 거리가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아마 조엘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 적이 없고 매번 사랑에 적극적인 상대에게 고백을 받았을 것이다. 클레멘타인처럼 적극적인 여성에게. 아마도 이전 여자친구인 나오미 역시도 비슷한 성격이지 않았을까 싶다. 


밥먹는데 말거는 사람이 제일 싫다.. 하지만.. 혼자 밥먹는 내가 가끔은 더 싫다.. 말 걸어줘.. 아니 말걸지 말아줘..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손을 잡고 도망친 기억때문이다. 아마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아니 두려웠을 것이다. 어린시절, 엄마가 자신을 신경쓰지 않아서 외로움에 떨던 기억을 그녀가 알면 언젠가 그런 자신의 두려움을 이용해 괴롭힐까봐, 그 전에 아이들 앞에서 새를 망치로 내려친 기억을 이야기한다면 자신 속의 폭력성에 치를 떨고 자신을 떠나가 버릴까봐,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로 함께 돌아간 클레멘타인은 그 순간에 조엘을 위로해준다. 아니, 어쩌면 이건 조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나의 어둠 속 이야기를 말해도 위로해주길, 이런 내 과거를 알고 있어도 계속 나와 함께 있어주길. 그래서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어릴적, 외모 콤플렉스로 고통받던 그 순간에 조엘은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는지도 모른다.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과거를 껴안아 줬으면 하는 만큼 강하게. 그래서 그는 이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외칠 수 밖에 없다.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주세요’     


아마 다른 기억속에 클레멘타인 역시도 조엘의 다른 과거를 안아준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클레멘타인이 이미 조엘의 상처를 안아주었던 적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조엘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이 그를 위로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망각하는 존재인지라, 자신이 상대를 안아준 기억만 오래 기억하고 타인이 자신을 안아준 기억은 쉽게 잊는다. 


매듭을 시작한건 너였으니, 그 매듭을 이어가는 용기는 내가 낼게.


그래서 우리는 상대에게 자신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한번이 아닌 여러번, 계속해서 상처를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있더라도 조만간 상대의 따뜻함을 잊는 순간 서로에게 차갑게 상처주게 될 것이기에, 서로의 체온을 잊지 않도록 자주 계속해서 안아주어야 한다.


아니다. 상처주게 될 것이기에 서로를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안아주어야 한다. 영화에서 조엘이 말하듯이 Enjoy it.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지금을 즐기자. 지금 이 상황을 즐기며. 내가 옆에 있음을 상대방의 몸에 새기자. 영원한 햇빛보다 더 뜨거운 사랑의 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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