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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환 Mar 17. 2020

11일 차, 오늘은 파랑

대학교육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일지 

11일 차


오늘은 버틸만했다.

아침부터 울리는 카톡은 마찬가지지만 확실히 맷집이 생겼다.

대응팀도 노하우가 생기나 보다.

나도 강의 찍고 논문도 써야 하는데 눈은 질의응답 게시판에 가 있고, 마음은 잡히질 않는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왼쪽 눈 시린 것이 나아지질 않는다.


질의응답 게시판을 만든 지 5일 차.

질문과 답변글이 100개가 넘었다.
카톡 글은 세어보지 않았다.

아침부터 받은 전화와 문자도 세지 않았다.


출애굽도 이랬으리라.

모두들 새로운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길을 떠나려니, 여러 가지 감정과 소회가 들었을 것이다.

쫓기듯 광야길을 가다가 요단강은 만났을 때, 모두들 좌절하며 원망과 한숨을 쏟아냈으리라.


우리도 비슷하다.


서버 다운, 동영상 제작, 인코딩 문제, 온라인 라이브 강의...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니 다들 힘에 부치나 보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길을 가고자 하지만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다.


교수님들 중에는 벌써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이 생긴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적응 못하면 은퇴할까 봐요. ㅠㅠ


이십 년 전 ICT 교육이 초중등에 들어올 때 선배 선생님의 얘기와 같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도움을 드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교수님들은 교수님들대로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각자의 입장에서 걱정한다.

교수님들은 강의 제작과 시스템 사용에 익숙지 않아서 걱정이시다.

학생들은 자신의 출결이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다.


출애굽이 가능했던 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모세라는 출중한 리더와 리더를 돕는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힘들고 낙담할 때마다 비전을 보여주고 마음을 다독이고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극복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 조력자가 되면 된다.

다행히 오늘은 큰 사고 없이 마감했다.


몇 가지 대표적인 문제는 컴퓨터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했다.


컴퓨터는 정확하고 참으로 융통성이 없다.
인코딩 포맷이 조금만 틀려도 받아들이질 않는다.


만들고 보는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동영상일 뿐, H.264, mp4, mov, wmv... 뭐 이런 게 왜 필요한지 모른다.

분명히 같은 방법으로 만들고 똑같이 올렸는데, 왜 1번은 되고, 2번은 안되냐고 따진다.

열어보면 다르다. 단순한 활용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면 원인을 알 수 있다.


미래사회에  '컴퓨팅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이  필수 역량이 될 것이라는 페퍼트(Papert)의 주장이 맞았다. 


컴퓨터는 정확하고 까칠하다. 자신이 정한 룰에 맞지 않으면 도통 융통성을 발휘할 줄 모른다.

컴퓨터를 이해하지 못하면 컴퓨터를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한두 번 해보다가 안되면 두려움이 생기고, 괜한 자괴감도 든다.

결국 나중에 포기하고 만다.

디지털 세상으로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공동체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함께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 교수님이 구글 미트 사용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몇 번 화상으로 연수해 드리고 동영상도 드렸건만, 문서로 보시는 게 편한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인쇄물이 더 편하다. 벌써 노안이 시작됐다. ㅜㅜ


급하게 구글 미트 사용법 가이드를 만들어 드렸다.

예상대로 동영상 수업보다는 라이브 방식을 시도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또다시 몇 가지 문제 상황을 예측해 본다.

웹캠 설정, 마이크, 오디오 설정, 녹화 기능 사용, 라이브 출결 체크...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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