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루한 검은 가루가 새로운 사건을 물어온 것 일지도 모르겠다
화면에 글자를 옮겨가는 작업을 하는 이 시간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하지 않는다. 그 짐작이란 몸의 변화보다 더 빠르지도 못한 나의 소모된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는 것인가? 감정은 소모된다. 소모되지 않는 것은 뭐가 있을까. 세상의 어떠한 것에 소모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오늘 오후에 나무가 높고 우거진 숲에 갔다. 머리 위로 고개를 들어보니 까만 점들처럼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쏟아질 것 같은 까만 가루들은 바람의 가루가 되어 나를 지루하게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머리카락이 그쪽으로 날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새가 많이 울었다. 무섭게 울었다. 가끔 멈치기도 했다. 우는 것을 멈출 때, 갑자기 주위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벤치에 앉아있는 나는 다른 시간의 사물들 사이로 혼잡한 공기에 새로운 사건을 탐내고 있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을까.
가방 끈을 붙잡고 흙이 잔뜩 묻는 그 길로 지나가는 긴 다리가 입은 청바지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짧은 줄에 묶여 산책을 한다. 모자를 눌러쓴 사람은 그들의 줄을 단단히 붙잡고 자신의 모자도 붙잡고 한 손에는 커피를 붙잡고 그 걸음을 나는 쫓는다. 검은 가루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그 지루할 틈에서 벗어나 나는 그 걸음을 언제든 따라갈 수 있는 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검은 가루들은 어디론가 묶여있는 생명체처럼 살아 숨 쉰다. 햇살이 들어오면 눈부신 빛을 내며 살랑이기도 하고, 그늘이 닥쳐오면 그 어떤 것보다 어둠을 몰고서 암흑을 그려온다.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중히 여기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저 지루하지 않는 검은 가루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가 끌리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그 숲에서 새로운 사건을 언제든지 탐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그늘인 채로 공기의 햇살까지 까맣게 태워버리는 공기를 가끔 마시고 싶어진다. 얼마나 뜨거울까. 얼마나 차가울까.
기억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많다. 내가 상상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는 것을 나는 상상한다.
오늘 밤이 다 가기 전에 어떠한 글이라도 적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나의 지루한 검은 가루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루한 검은 가루에게.
너는 검은색이 아닌데도 나에게 검은색이라 불리게 되었구나.
단지 검은색인가 하는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잠시 검은색으로 떠올렸음에도.
다시 봐도 검은색이 아니었음에도.
너는 검정 가루가 되었다. 지루하게 말이야.
쏟아지는 검정가루 속에서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것을 받으러 다음에 다시 찾아와야지.
그냥 일단 써재끼라는 암시로 -
고치지 않고 그냥 남기고 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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