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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페르낭 크노프의 비밀

벨기에 왕립 미술관 (브뤼셀)

by 료료
2023년 여름, 벨기에 왕립 미술관 앞에서_료료v


벨기에 왕립 미술관의 역사는 17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대혁명이 끝나고 유럽 각국들과 전쟁을 벌이던 프랑스는 1794년 벨기에를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시킨 후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때 나폴레옹 정부는 벨기에 가톨릭교회가 갖고 있던 재산을 몰수한다. 교회 재산 가운데 중요 미술품을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영토 확장과 함께 늘어난 미술품들을 모두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할 수 없었다. 1801년 나폴레옹은 벨기에 브뤼셀을 포함한 15개국에 미술관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돌려받은 미술품 50여 점을 바탕으로 샤를 궁전이 있던 자리에 브뤼셀 미술관(Museum of Brussels)을 세웠다. 나폴레옹 군대가 모은 각종 예술품으로 포화 상태가 된 루브르 박물관을 대신해 지은 미술관인 셈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결과적으로 다행이인건가? 생각했지만 역사적으로 벨기에가 프랑스에게 입은 상흔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환된 미술품이 50여 점에 불과하다는 점은 많은 문화재가 여전히 프랑스(루브르)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고, 벨기에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하여금 자국의 문화적 주권을 침해받은 것이 틀림없긴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라도 보존할 수 있어서 여전히 다행이라는 생각. 변함없는 상반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직 내가 미완성된 존재여서 일까?


2023 여름 7월,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관에 갔다. 아침 일찍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거닐었다. 종일 걸어도, 걸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그 공간에 취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그곳에서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었다. 19세기말 벨기에 상징주의 대표 화가, 그의 작품은 신비롭고 몽환적이었다.


페르낭의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가 떠올랐다. 풍성한 붉은 머리카락, 팜므파탈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여성들, 그리고 감각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 두 화가의 세계가 묘하게 얽혀 있었다. 페르낭의 차갑고, 유혹적인 면과 클림트의 색채 황금빛 열망이 서로 어딘가 닮아 있는 듯했다.


마치 주술로 감각을 깨우는 듯. 이질감이 드는 그의 붓끝에서 다시 태어나는 그녀들은 고혹적이면서 해석하기 어려운 미스터리 한 존재들로 남는다.


요정 여왕 아크라시아와 브리토마트, 1892


이 그림은 에드먼드 스펜서의 서사시 "요정 여왕"에 나오는 두 인물을 묘사했다. 왼쪽은 아크라시아, 오른쪽은 브리토마트이다. 브리토마트는 운명의 상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기사, 아크라시아는 유혹적인 여왕으로 묘사된다.


페르낭 작품 분위기는 신비롭다.

내면적인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기분이. 어떤 마음으로는 이 정도로 알고 싶지는 않은데.. 생각을 했다가, 어떤 마음으로는 깊이 볼 수록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기분이 나도 모르게 흐뭇한 기분이 들기도.


거리를 두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다가서게 된다.


기억들(Memories), 페르낭 크노프, 1889, 벨기에 왕립 미술관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서 마주한 마르그리트들_료료


작품 속 여인들은 모두 페르낭의 6살 아래 동생인 마르그리트, 동일 인물이다. 여동생 마르그리트에 대해 남매 이상의 감정으로 그녀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일곱 명의 여인들은 서로를 외면한 채

마치 같은 곳에 있지 않는 것처럼.

서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서로 낯선 모습들로 자기 세계에 빠져있는 모습이 든다. 마르그리트와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해 오며 자신의 작품 모델로 삼아왔다.


스핑크스 또는 애무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를 가로막고 퀴즈를 내는 인물이다. 스핑크스는 표범의 몸을 하고, 오이디푸스 볼과 머리에 기대어 지긋이 유혹한다. 오이디푸스 또한 스핑크스 쪽으로 기대어 서 있으며, 왠지 여성스러운 얼굴을 가졌고, 스핑크스는 눈을 감았지만 사각의 턱과 분위기는 남성적 분위기를 내고 있다.


파란 날개

꿈의 신, 히프노스에게 파란 날개가 달려 있다. 신의 날개란 영혼의 도주, 탈출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여성은 면사포를 쓰고 한 손으로 아주 소중하게 백합을 쥐고 있다. 그리고, 별빛으로 물든 은색 버튼이 그녀의 입술을 봉인하고 있다. 모든 것이 어떠한 것을 상징하고, 존재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비밀은 잘 풀리지 않는다.


그의 최면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비밀스럽지만 납득이 되어가는 세계가 페르낭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화가 누이의 초상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마르그리트는 페르낭의 뮤즈인 것이 분명했고, 오로지 본인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림에 등장시켜 감히 가질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게 하는 유일한 인물이지 않았을까 한다. 목까지 올라온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동생은 어찌해서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 것일까? 그것마저 담고 싶었던 페르낭의 바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는 자신을 원하지 않는 마르그리트를 보며, 자신의 세계인 그림 속에 가둬버린 느낌이 든다.


페르낭 크노프의 무의식대로를 달리다 보니, 기괴한 유혹에 빠져들어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브뤼셀에 갔을 때 우연히 왕립 미술관 규모가 제법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편에게 가고 싶다고 했었던 것이 나 자신을 더 칭찬하게 된다. 사실 미술관에서는 그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신비로운 느낌에 사로잡혀 그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봤던 것 같기도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페르낭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신화적이면서도 모호한 형태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알폰스 무하도 이들과 연관이 있을 법하다.


화가들은 보통 그림에서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페르낭에게는 더욱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추상적인 것이 오히려 더욱 신랄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폐쇄적이지만, 반복되는 상징성을 보면서 그들의 연관성을 찾게 된다.


그의 그림 속에는 무궁무진한 스토리들이 숨겨져 있다. 서로 바라보지 않는 침묵 속에서도 수많은 글감들이 숨어있다.


조각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 그는 구글 포토에 얼마나 남아 있을지 나도 의문이다.


페르낭의 위협적인 기묘함에도

그 세상을 고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삶에 대한 환멸이라 할지라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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