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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세상에는 아직 사랑할 만한 것이 있다.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시 <개새끼>

by 료료

1923년 관동대지진의 혼란 속에서 ‘박열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는 천황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체포했다.


감옥에 수감된 후, 후미코는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 기록이 바로 『나는 나』다. 그 책 속에는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부강(현 세종시 부강면)의 풍경이 담겨 있다. 계급이 사람의 삶을 구분해 놓던, 철저히 나뉜 마을이었다.


그 시절 부강에서 사람들이 지키려 했던 ‘체면’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계급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규칙이 먼저였고, 제사와 잔치도 같은 계급끼리만 오갔다. 음식을 주고받을 때에도 내용보다 겉모습과 가격부터 따졌고, ‘받은 것보다 모자라 보이면 안 된다’는 기준이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 잔칫날이나 장례 때는 집안의 위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여자들은 더 화려하게 치장했다.


철도역 앞은 그 시대 분위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소였다. 고관이나 명사가 지나가는 날이면 학생들과 마을 유지, 여자들까지 모두 나와 정렬해야 했다. 남자들은 적십자사원 견장을, 여자들은 애국부인회 표식을 달고 서 있었다. 부강이라는 마을이 가진 겉과 속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후미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분이나 계급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과 태도라고 말한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정작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규칙에 얽매일 때가 있다. 『나는 나』는 지금 세종을 사는 우리에게도 묻는다.


“나는 내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후미코는 조선에서 보낸 일곱 해를 모두 부강에서 지냈다. “조선에 온 이후로 줄곧 학대받았다”라고 말할 만큼, 따뜻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힘들었던 일을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이제 지긋지긋해. 그건 네가 주눅 들어 있어서 그래. 모두 네 성격 탓이야.” 그녀는 그 말을 그대로 견뎠다.


1900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는 태어날 때부터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채 버려졌고, 폭력과 굶주림 속에서 살다가 1912년 부강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천박하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았고, 어느 날 강물 앞에서 생을 끝낼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 사랑할 만한 것이 있다”는 생각 하나로 돌아섰다. 3·1 운동 직후 일본으로 돌아간 뒤 가출해 도쿄로 가 신문배달과 인쇄소 일로 스스로를 지탱했다.


후미코는 박열을 만나고, 그의 시와 사상에서 자신이 찾던 세계를 보았다. 두 사람은 동지로서 서로의 삶을 걸기로 했고, 결국 그 선택은 일본 제국을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되었다.


박열과 후미코는 함께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며 사형까지 각오한 재판에 선다. 1926년 조선옷을 입은 두 사람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려했던 시간이었다. 후미코는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조력자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사상과 삶의 방식으로, 한 인간으로서 법정에 섰다.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후미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외쳤다.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후미코는 감형장을 찢어버렸다. 감옥에서 900매 넘는 글을 썼지만 대부분 압수되었고, 단카 몇 편만 남았다. 1926년 7월 23일, 그녀는 감옥에서 스스로 생을 마쳤다. 남은 것은 빗 몇 개와 찢긴 책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말했다.


“나는 사실을 사실대로 쓰겠다.”

영화 <박열>

92년 뒤인 2018년, 대한민국은 그녀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개새끼〉 —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시 〈개새끼〉는 1922년 잡지 ‘조선청년’에 실린 박열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불량한 조선인’으로 불리던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의 처지를 숨기지 않았다. 영화 〈박열〉의 이준익 감독은 이 시를 두고 말한다.
“양반의 가랑이 아래에서 오줌을 맞으면서도 다시 그 다리에 오줌을 누는 개. 박열은 그 모습에 자신을 투영했다. 이 시는 그의 아나키즘 그 자체다.”


후미코는 이 시를 읽고 말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의 마음을 강하게 묶었다. 내 가슴의 피가 뛰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것을 이 시에서 발견했다.”

그녀는 그 길로 박열의 세계에 들어갔다. 둘은 1922년 늦봄, 도쿄 신발가게 2층 다다미방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동거를 시작하며 세 가지 약속을 세웠다고 한다.


동거법전 3조

1. 동지로서 함께 살 것

2. 내가 여성이라는 관념을 없앨 것

3. 둘 중 하나라도 사상적으로 타락해 권력자와 손을 잡으면 즉시 공동생활을 끝낼 것


가네코 후미코는 짧은 생을 살아냈지만, 끝까지 “나는 나”라는 한 문장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의 규범이나 계급, 시대의 폭력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다. 그녀가 남긴 기록은 한 인간이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질문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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