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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료 Aug 20. 2024

'온점의 부메랑'

김환기 '우주' 성장 에세이 2차 퇴고

자신을 내던지는 이유

갑작스레 아랫배가 싸해졌다. 뻣뻣해져 굳어가는 몸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선홍빛 혈들이 뚝뚝, 새빨갛고,  난관을 넘어 번져갔다. 떨리는 손으로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지금은 산모가 움직이는 게 더 위험해요. 여기서도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라는 대답만이 돌아왔었다.      


큰 베개 위로 다리를 올리고, 가만히 누워서 절대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모든 감각이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중으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가슴이 숨을 세차게 조여들었다. 비정상적인 숨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불안한 파동이 배 속의 아이에게 전달될까 두려웠다. 위태롭게 두 손을 붙잡아 기도했다. 하지만 수많은 마침표가 휘몰아쳐 오는 소용돌이 속으로 걸려들었다. 마치 글을 마무리하듯, 나를 끝맺기 위해 들여 다친 온점이 나를 찍고 있는 것 같아 온 마음으로 고통스러웠다.       


흐물흐물한 햇살에 눈을 떴다. 병원으로 곧장 갔다. 간호사는 나를 그 불편한 의자에 앉혔다. 의사는 조심스레 검사를 하고는 침대에 누워보라고 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며 말했다. “절박유산입니다.” 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살았다’ 몇 번을 되새기며 눈을 질끈 감았다. 후드득 터져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내었다. 밤새워 지키고 있던 간절함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나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한 달 정도 부정 출혈 증상이 보일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인 피가 나오는 것뿐입니다.” 정말로 일주일 동안 새빨간 피를 봤다. 약속을 지키듯 갈색 피와 붉은 피는 번갈아 가며 꼬박 한 달을 채웠다.


이게 나야

올해로 만 15세인 그 딸은 집도 싫고, 학교도 싫다고 한다. 아침, 저녁 시간 상관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쳐들어오는 딸의 아찔한 공격이다. 미리 준비한 대사를 꺼내려고 하는데, 그 말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마, 그거, 아니야.' "지금 더워서 더 기분이 좋지 않은 걸 거야. 네가 좋아하는 소르베(프랑스식 셔벗)를 먹으러 갈까?” “엄마,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야. 네 얼굴에 다 티나!”     

     

버티고 서있는 그녀를 밀어내며, 카페 앞까지 데리고 갔다. 전면 유리에 붙어 있는 광고 메뉴를 보여줬다.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흘겨보는 척 바라봤다. “이래도 안 먹을 거야?” 그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최소 10번 정도는 말해야 말을 들을까 말까 했다. 아무래도 남편을 닮은 것이 확실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도전에 실패할까 봐 두려워 머뭇거리고, 외면하려 한다. 자신이 선택한 계획이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는 자신을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녀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너무 좋은 소식이 있어!” 전날 시험점수가 제대로 안 나올까 봐 걱정하던 딸과 겹치며 갑자기 기대하게 되었다. “놀라지 마! 나 수학 51점이야!” 놀라지 않을 수가 없긴 했다.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네가 지금 정말 기분이 좋은 거야?”라고, 되물었다. “응! 나는 50점도 안 넘을 줄 알았는데, 51점이잖아!” “와우! 그렇다면 좋은 소식이 맞네! 축하해!” 전화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었다.      


“그 점수라면 학원에 다니는 것이 좋겠어.” “기말고사는 더 잘 볼 거야.” “기말고사는 더 어려워. 네가 더 낮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어.” 반 친구들이 딸의 점수가 걱정되어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녀의 기말고사는 63점이 나왔다. 그녀는 “엄마 수학 점수가 올랐어!”라며 또 기뻐했다. “정말 기쁜 거 맞아?”라고 또 물었다. “응. 점수가 안 떨어지고 올라갔잖아!? 이번에는 진짜 내가 다 풀었어!”라며 멋지게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역시 인생의 점수는 스펙터클 한 거라며, “이게 나야!”라고 개운하게 외쳤다.   

   

무용수의 파랑

무용수는

매 순간 관절로 간절하게 속살을 드러낸다.

팔다리로 묶여 발끝은 중심을 잡지 못해도 홀로 연기를 하게 된다.     


작은 점 하나

아무것도 없는 점 중에 하나

매끈하며 윤기가 있는 점 중의 하나     


무리는 무리가 되어

파동을 삼키며 소외당하지 않는다.

까마득함에 앉은 눈은 파랑의 우주를 닮는다.                   -우주(김환기)를 바라본 곽효진 글     


온 세포들이 사계절을 돌고 돌아 김환기의 '우주'를 만났다. 그들은 자유로운 날개를 뻗어가며, 반짝이는 어느 별보다 멀리 빛났다. 환한 여름, 나에게로 와준 두 딸의 세포들이었다. 그 세포들에 '날개의 아이', '미래의 아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투명한 속도로 세월의 현실과 이상에 부닥치며 태어난다. 쉼표와 마침표처럼, 미래의 날개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길 바랄 뿐이다. 나는 두 딸의 엄마다. 세포의 반점에서 온점을 더하듯 나의 우주에서 그들의 우주를 더 한다. 그렇게 온 세상의 엄마가 되어 간다.


김환기 '우주'

1) 절박유산 : 유산이 된 상태는 아니지만 자연유산이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상태이다. 임신 초기(20주 이내)에 분비물이나 출혈, 피고임 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전체 산모의 20~25%가량 겪으며 출혈과 함께 통증이 느껴질 수도 있다.


2) 우주(김환기)를 바라본 곽효진 글 설명 : 각자 인생을 그리는 불완전한 무용수로 살고 있다. 누구나 혼자이지만 무리에 속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멀리 저 빛, 나는 하나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그중에 윤기가 나는 그게 바로 나. 무리를 이루는 단체는 그 이상 무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활동의 여파를 끌어안고, 소외당하지 않는다. 모든 동경의 대상이 파랑의 우주 속을 닮아간다. 닮아가는 내 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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