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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료 Jun 24. 2024

김환기 작가의 '우주'에

성공한 무용수의 간절한 관절의 무한한 빛

우주의 유리는 뜨겁게 흘러내렸다.

떨리는 손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당장이라도 병원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오지 말라는 대답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베개 위로 다리를 올리고, 가만히 누워서 절대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베개를 찾기 위해 엄마를 불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의식조차 분별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밀려오는 것은 그 무섭도록 차가웠던 그녀의 목소리가 여전히 나를 고유한 질량 속에 가두고 있다.     

수민이를 가진 뒤 첫 부정 출혈의 증상을 보인 날이었다. 주말부부를 하고 있던 나는 친정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와 식탁에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상식적인 선을 충동적으로 넘나들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레 아랫배가 싸해지며 수축되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자리한 뒤 내 몸을 내려놓았다. 무언가 뜨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슬쩍 내려다보니 선홍빛 혈들이 뚝뚝, 새빨갛게 퍼져가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공중에 매달려 심장이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크게 피어나지 않아도 힘없이 미끄러져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깜깜한 밤하늘을 보며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볼 까 망설였다. 너무나 길었던 그 밤을 가끔 떠올려본다. 샤를 자크가 담아 놓은 수많은 양 떼들이 농장으로 항해한다. 작은 점하나, 아무것도 없는 것 중에 하나, 매끈하며 윤기가 있는 점 중에 하나에 바퀴를 돌며 소외받지 않았음을 건네받았다. 어둠에 앉은 눈은 블루를 담고 있는 소음에서 시작되어 춤추는 고통을 모두에게 넘겨주었다.     

샤를 에밀 자크, 농장의 양떼, 19세기


우주의 발목

성공한 무용수에게는 매 순간 빛을 내는 관절로 간절히 무한하다. 팔이 묶여 팔로 짚어낼 수도 없는 미칠듯한 우주의 의상을 입고, 미친듯한 우주에 발목을 담근다. 출발과 도착지가 다른 감정의 두발로 걸어가지만 어디에도 미치지 못한 자유로움은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다림에 홀로 연기를 하게 된다.     

흐물흐물한 해의 눈부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밤새 지키고 있던 두려움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었다. 열고 싶지 않은 방문 손잡이를 돌렸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옷을 입은 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과 다르게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다.     

원소 중에 갈륨은 30℃밖에 안 되는 낮은 녹는점을 가진, 광택 있는 금속이다. 갈륨 샘플을 손에 들고 있으면 녹게 된다. 녹은 갈륨 액체는 피부를 약간 물들이겠지만 독성은 없다고 한다. 그저 나는 그녀 손에 붙잡혀 녹아내리고 있는 순수한 갈륨일 뿐이었다. 엄마의 피부를 약간 물들일 수 있다는 것에 고집을 피워보았다.      

“엄마와 병원에 절대로 같이 안 갈 거야! 절대로 따라 나오지 마!”     

결국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초음파 검사를 했다. 수민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눈물이 후드득 흘러내렸다.      

“절박유산입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생리처럼 부정출혈 증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새빨간 피가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한 달을 채우는 갈색 피가 나의 두려움의 주스를 조금씩 마시곤 했다.     

가끔 수민이는 집도 싫고, 학교도 싫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너는 지금 당이 부족하니 시원한 소르베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녀는 싫다고 했다. 최소 10번을 말해야 들어 보려한다. 주말에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고 왔었다. 주인공 라일리를 보면서 수민아!라고 외칠 뻔 했다. 아니 외쳤다.      

김환기, 우주 5-XI -71 #200

관객들의 우주 속에서 희생하는 별들을 바라본다

불안의 유리는 뜨겁게 가열되면 아래로 흘러내린다     

멈추지 않는 동작으로 한 마리의 새보다 신명 나게 날개를 뻗는다. 

역동적인 붓으로 불안에게 향한다. 

돌고 돌아 끝도 없이 모든 감정을 비추어 구두점을 찍는다.      

관객들의 우주 속에서 희생하는 별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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