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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타타 Apr 22. 2023

내 아버지, 고상욱 씨의 인드라망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1.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 고상욱 씨의 인드라망이다.

제각각 만물이 서로를 비추는 구슬이 있다. 이 구슬은 제각각 다른 모든 구슬과 연결되어 있다. 이 구슬의 그물망을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딸이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 구슬을 중심으로 연결된 인드라망을 보여준다. " 아버지가 이 작은 세상에 만들어 놓은 촘촘한 그물망이 실재하는 양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났다."  딸, 아리가 처음부터 이 영롱한 구슬망을 알아챈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전봇대에 들이박고 죽을 때까지도 몰랐다. 초상집에 찾아오는 상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아버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따뜻한, 너무나 따뜻했던 아버지의 삶이 결코 하찮게 잊힐 삶이 아닌 걸 알고는 글재주를 발휘하여 글로 남겼다. 그리고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되었다.


2.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딸이 아버지를 해방시켜 주는 씻김굿이었다.

아리, 이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아버지 고상욱 씨의 딸이다. 아버지 초상을 치르면서 문상객들을 통해 아버지 과거 삶을 회상한다. 아리가 유년기에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빨갱이의 딸로 살아가야 했던 소녀, 청년 시대에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가 너무 크기에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쇠락해 가는 사회주의적 신념을 실천하고 있는 아버지를 비아냥거리도 많이 했다. 아리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렸던 부분은 아버지의 신념이 자체 모순을 보이고 있던 지점에서다. 예컨대, 아리 이름을 지을 때, 아버지 활동지 백운산과 어머니 활동지 지리산의 이름을 따서 지으려고 했으나 남자 이름 같다며 애써 백운산 옆의 백아산 이름에서 '아'자를 취하여 아리라 이름 지었는데, 남자 이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어찌 사회주의적 이념에 맞을까? 또 아리가 학위를 따고 책을 냈을 때, 딸의 책을 돌리고 한 턱 냈던 것은 사회주의에 맞는 걸까? 딱 한번 아리가 본 것이지만 술집 주인 하동댁 엉덩이를 두들겨주는 아버지 행동은 빨치산다운 것일까? 아리는 이런 모순을 여러 군데 발견하면서 아버지를 비아냥 거렸지만, 이런 모순이야말로 이 소설을 빛나게 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 장치는 아버지를 해방시켜 주는 씻김굿 노릇을 한다.


3.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를 넘어선 오주카며니스트였다.

이건 순전히 환타타타 생각인데, 아리는 아버지의 모순을 통해 아버지의 위대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사회주의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유물론을 넘어선 사람이다. 이념을 추구하되 이념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한겨레 신문을 보면서 조선일보 보는 교련 선생 친구를 제일 괜찮은 사람으로 보았고, 자기를 감시하는 형사들과도 형동생하며 지냈으며, 사회주의적 호의를 배반하는 민중을 끝까지 이해하고 감쌌다. '오죽했으면' 하면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이 말은 주인공 고동욱 씨의 18번이다. 그의 사상은 사회주의만으로는, 유물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굳이 주의를 따지자면 그의 사상은 '오주카하며니즘'이다. 이것으로 인간을 신뢰한다. 이것으로 나약한 민중, 배반하는 민중을 포용한다. 그는 인간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차라리 과학적 사회주의가 분석한 '사회적 모순'에 죄를 뒤집어 씌웠으면 씌웠지 그 사람을 직접 정죄하지 않는다. 하룻밤 재워 준 방물장수 아줌마가 마늘 한 접을 도둑질해 가도 '오죽했으면 그렀겠어?', 빚보증 등 처먹고 도망간 젊은 과부를 향해서도 '오죽했으면', 교통사고 난 한 씨 사위 시신을 수습해 주고도 택시비도 돌려주지 않는 한 씨를 향해서도 '오죽했으면'하고 이해하려 했지, 결코 서운해하거나 사회주의를 의심한 적은 없었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챘거나, 스스로 좁은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오주카며니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주카며니즘, 이것은 거창한 어떤 이념보다 고상하고 매력 있었다.


4.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내이자 신념을 공유하는 동지였다.

어머니, 빨치산 동지였던 첫 남편을 잃고 그의 친구인 빨치산 아버지와 재혼하여 필자 '아리'를 낳았다.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동지이자 아내이다. 남녀평등을 주창하는 사회주의자답게 그 시절에 요즘 페미니스트만큼이나 가사를 분담한다. 딸과 많이 놀아주고, 시장 간 아내 대신 밥도 짓고, 아이를 목마 태우고 아내 마중을 나간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그다지 힘이 돼 주지는 못한다. 감옥살이에, 피감시 살이에, 오지랖 행보에, 노동 잼뱅인 남편 뒷수발은 아내 몫이다. 이런 아버지를 오지랖 행보에 조금이라도 서운한 기색을 보이면 아버지는 늘 "자네 혼자 잘 묵고 잘 살자고 지리산에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 사회주의자 맞아?" 이 말 한 마디면 어머니는 깨갱이다. 목숨 걸고 지리산 입산할 때 가졌던 신념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환타타타는 어머니 그 마음을 알고 싶다. 남편의 오지랖 넓은 행보에 가끔 딴지를 걸다가도 남편의 한 마디, "당신 그러려고 지리산에서 목숨 걸었는가?" 하면 깨갱하는 그 마음을. 어머니도, 그 딸도 말해주지는 않는다. 왜 그랬을까? 느낌으로 추측되는 몇 가지 이유를 적어본다. 우선, 사회주의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천한 일꾼을 신성한 노동자로 대접해 주고, 여성에게도 배움과 사회생활의 길을 터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새 세상의 희망을 주었던 사회주의였을 것이다. 그 덕에 비로소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았는데 남편 오지랖 행보로 인해 힘든 것쯤이야. 그리고, 남편의 오지랖 행보가 집안에 큰 이득은 가져다주지 못했지만, 남편은 참 미더운 사람이다. 선공후사라 집안 살림에 큰 보탬이 안 되어서 그렇지, 노름을 하기나 하나, 바람을 피우기나 하나, 오로지 사회주의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 여기 있는 곳에서 사회주의의 상호부조적 삶을 실천하는 남편. 그려, 세상에 이런 반듯한 남자 어디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빨치산 동지 아닌가? 환타타타를 비롯해 요즘 세대에 목숨 걸고 살아본 사람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최악의 조건에서 동지들과 함께, 새 세상을 위해. 피를 나눈 형제보다 피를 함께 흘린 동지가 더 가까운 법. 시절이 바뀌어, 신념이 다른 사회에서 딸 낳고 절반쯤 적응하여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 신념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남편이 가끔 혼내는 말, "당신 사회주의자 맞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말이다. 깨갱할 수밖에.


5.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세 가지 해방을 품고 있다. 

첫째 해방은 죽어서야 그만둘 수 있는 사회주의 혁명 과업,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아버지의 오지랖 행보는 아버지의 천성이 아니라, 스스로 짊어진 사회주의 혁명의 길이었다. 이 길은 힘들고 외롭지만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 마치 증자가 군자의 길은 그 임무가 막중하여 버거울지라도 "죽은 이후에라 그칠 수 있다." <논어, 태백>고 말한 것과 같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 과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사실 그이는 벗어나고 싶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흔쾌히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무리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과업은 과업인지라 무겁고 힘들다. 특히 그를 바라보는 딸의 입장에서는. 그러기에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해방은, 죽음으로서만 끝날 수 있는 혁명 과업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 해방은 자본주의 굴레에서 소외된 민중의 해방이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민중 해방의 삶이었다. 피의 투쟁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해방 운동인가? 아니다. 일상에서 소외된 민중의 편에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해방 운동 아닌가? 마르크스의 말처럼 '각자의 자유로운 삶이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삶을 증진하는 사회'가 꼭 혁명이 완성된 공산사회에서만 가능한가? 아버지처럼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살면 그렇게 되는 거지. 아버지의 오지랖 행보는 다름 아닌 민중들의 인간 소외로부터의 해방 운동이었다.

셋째 해방은 빨갱이에 대한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것은 저자인 딸과 독자인 우리들의 해방이다. 해방전후사를 살았던 우리는 이념적으로 편 갈려 있었다. 사상적으로 자기 검열, 타자 검열을 거치면서 빨갱이는 스스로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했고, 파랭이도 빨갱이로 몰릴까 두근반세근반 가슴 조이며 살아왔다. 이 책으로 인하여 빨갱이와 파랭이를 넘어서는 인간애를 발견했고, 종교가 다름을 인정하듯이 신념이 다름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으로 인하여 빨갱이가 금기어에서 벗어나 보통명사로 지위를 되찾았다. 이 책으로 인하여 빨갱이에 덧씌워진 악마 이미지가 한 꺼풀 벗겨진 것 같다. 빨갱이는 피부가 빨갛지 않은 것은 물론, 머리에 뿔이 달리지 않은 것은 물론, 그렇게 악랄하지도, 그렇게 투쟁적이지도, 그렇게 고집스럽지도 않다. 그저 사람을 믿고, 그저 사람의 상호부조적 본성을 믿고, 그저 지금 이 땅에서 사람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더불어, 항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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