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을 읽고
내 아버지!
일자무식 가난한 돼지 백정
하지만 결코 이를 부끄러워하지도 비굴해하지도 않는,
딸 둘을 잘 키워 시집보내고
이제 열두 살 된 늦둥이 아들 ‘나’에게 다정하고
그리고 지혜로운 아내인 우리 엄마에게 고마워하고
좋은 이웃들에게 칭찬받는
독실한 셰이크교도
내 어머니!
백정 남편에게서 나는 돼지 똥내 피내를
노동자의 향기로 맡을 줄 아는,
이모의 질투 어린 소문도
있는 그대로 판단할 줄 아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자족할 줄도 아는,
아! 무엇보다 이웃집 소 출산을 돕다
죽도록 다친 내 몸을
덤덤 따뜻하게 치료할 줄 아는
우리 집 약사 보살
핑크!
옆집 쌍둥이 송아지 출산을 도운 감사 표지로 받은
새끼 돼지
먹여주고 씻겨주고 놀아주고 함께 우리에서 자 주며
잘 키워 박람회에서 푸른 리본도 받은 예절 바른 돼지.
새끼 치는 암퇘지로 키우려 했지만
아 안타깝게도 발정하지 않는 불임 도야지.
죽음을 예감한 아버지!
흉년 든 겨울 초입에
“내 이번 겨울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
“사람은 자기에게 남은 생명의 길이를 알거든”
나에게 농사꾼도 백정도 되지 말라며 공부를 포기하지 말라 하면서도
지금 농사짓는 땅을 꼭 소유하기 위해 농사를 계속하고
어머니 이모를 잘 보살필 것을 부탁하셨다.
내년이면 열세 살이 되니 이제는 어른이라고
책임져야 한다고 유언하셨다.
먹을 것 없는 한 겨울!
아버지는 핑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핑크에게 쏟은 정이 얼만데
핑크에게 기대한 희망이 얼만데
아버지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과
먹을 것 없는 겨울의 배고픔이 만나는 현실에
나와 아버지는 핑크를 붉은 돼지고기로 만들었다.
“아 아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맛이 없었다.
마을이 만들어낸 순수기억들!
소 출산을 돕다 소 목구멍 암-덩어리까지 떼어낸 나의 무용담
일꾼과 이웃 과부 아줌마의 예쁜 음담
비 오는 밤에 무덤을 파 관을 옮기는 이웃 동네 아저씨 괴담
핑크를 임신시키기 위해 이웃집 수퇘지와의 짝짓기 패설
깡촌에서 도시로 박람회에 참가한 촌놈의 도시 여행담
닭 잡아먹는 족제비와 이웃집 강아지의 혈투 이야기
아! 무엇보다 그날!
아빠가 돌아가신 날
헛간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신 아빠를 발견하고
“괜찮아요.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
담담하게 아버지 장례를 준비했다.
엄마 이모에게 알리고, 할 일을 정해 주고
읍내 장의사에게 알리고, 많지 않은 이웃들에게 알리고
무덤 주변에 도구들을 준비하고
아버지 장례 때 입을 옷이 왜 이리 크거나 혹은 작거나
“하느님, 왜 이렇게 가난해야 합니까? 사는 게 지옥 같아요.”
사람들이 오고, 아버지를 묻어주고
사람들이 가고,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다시 아버지 무덤으로 발을 옮겨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은 정말 행복했어요.”
그날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이었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