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그렇다고 말하기 전에 여지를 남겨라.
2**번 버스에서의 여자는 나를 확정범으로 몰았다. “내가 분명 당신이 내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느꼈고, 방금 그 자리로 도망간 것 아니냐?” 이런 말을 네 번씩이나 하면서, 분노에 찬 눈빛으로 나를 쏘아 부었고 기어코 112로 신고까지 했다. 나를 심문한 경찰이 질문한 바와 같이 ‘그 여자는 아무 이득이 없는데 왜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신고까지 했을까?’ 분명 누군가가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느꼈고, 성추행이라 생각했고, 수치심을 느꼈고, 화가 났고, 사과 내지는 보상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CCTV도, 경찰도, 검찰도 나의 결백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추행하는 것도 CCTV에는 나오지 않았단다. 그러면 가능성은 세 가지다. CCTV에 찍히지 않은 다른 사람이 교묘하게 추행한 것을 내가 한 것으로 착각했든지, 다른 어떤 부딪침을 만진 것으로 착각했든지, 아니면 잠깐의 환상(각) 상태에서 그렇게 느꼈던지. 모두 본인도 속을 ‘완전한 착각’, ‘확신적 착각’이다. 아마 그 여자는 아직도 경찰이 잘못 수사했다고 억울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자가 나비의 꿈도 사실은 이런 “완전한 착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분명 내가 나비였고 그렇게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녔는데 지금 꿈에서 깨어난 장주라니, 너무나 그 장면이 생생하여 혹 나비가 장주 꿈을 꾸는 것 아닐까? 생각할수록 헷갈린다. 장주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주 꿈을 꾼 것인지. 이건 분명 나비가 장주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고 우겨대거나, 내가 나비이고 나비가 나인 물아일체의 상태라고 우겨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겨대면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줘도 이해시킬 재간이 없다. 스스로 '한번 더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수밖에. 나비 꿈을 생생하게 꾸다가, 한 번 깨어나서 비몽사몽 혼돈 상태에 잠시 머문 후에, 한번 더 깨어나 모두가 통으로 꿈이었음을 아는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미친놈이라는 소릴 들을 것이다.
누구나 완전한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분명 그걸 수 없는데도 그게 그럴 수 있다. 100% 내가 옳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확실히 그렇게 보았는데 내가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확실히, 100%, 기필코, 등의 수식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아닐 가능성이 조금은 열려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그렇게 '기필하는 것'을 경계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러니 차라리 이런 단서라도 달고 확신하면 어떨까? ‘나도 인간인지라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판단으로서는’ 99% 확신한다. 자기 확신에 여지를 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