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읊조림

DMZ 평화의 길 6코스

by 환타타타

새해 첫날 걷는 길은 해 뜨는 동해 해파랑길이 어울리지만, 하루 만에 다녀오기에 너무 멀어, 대신 DMZ 평화의 길 6코스를 택했다. 지난번 걸었던 5코스 끄트머리에 있는 장준하 선생 기념 공원을 다시 찾았다. 시국이 하도 어수선하여 그에게서 힘을 받기 위해서다. 노벨 평화상 작가 한강이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한 질문에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살리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전하기 위해서다. 아니, ‘우리에게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라고 빌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모병풍석에는 그의 이력이 적혀 있고, 가운데에 그의 저서 ‘돌베개’을 상징하는 바윗돌 하나 놓여 있다. 뒷산 언덕을 40m 올라가면 선생의 무덤이 보인다. 놀랍게도 무덤의 봉분은 어디서 본 듯한 모양이다. 흙 봉분 대신 넓적한 바위 하나 덩그러니 놓은 무덤이라,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과 닮았다. 나중 분이 앞선 분을 본받았다고 봐야겠다. 두 분의 삶이 바위처럼 똑같이 단단했기에 무덤조차 닮았는가! 그 옆의 비석에 선생의 글에 바위처럼 단단한 결의가 엿보인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자손만대에 누(累)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정성을 다해 한결같이 용감하게 힘써 나아가자.


한 번 더 묵념하여 나랏일이 바로잡히길 기원하고, 후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살겠다고 다짐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그때 한 노인이 천천히 묘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말고도 참배하러 오는 분이 있다니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니 노인이 먼저 말을 건다. “참배하러 오셨어요?” “네! 진작에 왔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세월이 어지러울 땐 참배객들이 더러 옵니다. 평화로울 땐 오시는 분이 드물죠.” “혹 뉘신지 여쭈어도 될지요?” “여기 누워 계신 선생님의 큰아들입니다.” “아~ 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위인의 후손에게서도 위인의 기개가 느껴졌다. “곧 사상계가 재발행됩니다. 발행되면 꼭 구독하시면 좋으실 겁니다.” 아내와 나는 흔쾌히 대답하고 헤어졌다. 여기까지는 5코스 복습이다.


진짜 6코스는 성동사거리에서 낙하리 아랫마을까지다. 성동사거리는 헤이리 입구에 있는 사거리다. 헤이리는 서북 경기도에서 가장 뜨거운 문화예술 마을이다. 이 마을은 크게 서너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각기 다른 모양으로 집을 지어 조성한 주거지, 그 곁에 예술 작업 공간과 문화 산업 공간, 그 바깥쪽 언덕배기에는 이곳을 이용하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먹고 쉴만한 먹거리촌, 조금 더 멀찍이 이곳을 핑계로 연애하는 연인들의 숙박촌 구역들이다. 예술 공간 중에 한국 근현대사박물관, 황인용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 한길 북 하우스는 꼭 추천한다. 먹고 사랑할 공간은 알아서 찾을 일이다.


6코스 길은 헤이리 말고는 지극히 단순하고 밋밋하다. 전체적으로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의 내륙에서 동북쪽으로 임진강과 자유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간간이 자유로 밑 굴다리가 뚫려 있긴 하지만, 폐쇄되어 있거나 군인이 지키고 있어 감히 건너갈 수가 없다. 자유로 반대쪽은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기 때문이다. 문지리 근처의 자유로 건너편은 논이 넓은 평야인데 어쩔 수 없이 이쪽 카페나 언덕에서 저 너머로 볼 수밖에 없다. 6코스 중간에 있는 큰 카페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단순히 넓은 논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만일까? 저 건너편 너른 평야를 달리고 싶은 희망과, 저 평야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풍광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대동리 마을 앞 논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보였다. 논에 물을 대 얼려 만든 빙판에서 사람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수익 사업으로 운영하는 썰매장이다. 1,000여 평 논에 여남은 사람들이 놀고 있어 썰매장은 헐렁하다. 그중 어린이 한 명에 어른 두 명 비율이다. 한 아이를 엄마 아빠가 썰매를 끌고 있었다. 빙판 위에는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지만 도무지 흥이 나질 않는다. 날씨조차 겨울답지 않아 얼음 표면에 물기가 햇살에 눈 부시다. 내년에는 이 썰매장조차 문 닫을까 걱정이 앞선다. 농촌 마을 수익형 사업도 어린이가 받쳐주어야 유지된다. 서울 근처 농촌이 이럴진댄 먼 시골은 어찌할꼬.


민족 민주 문제는 선열들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인구 절벽 문제는 누구에게서 답을 찾을꼬. 행여나 ‘지역 균형 발전론’을 내건 봉하리 앞선 사람에게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장준하 선생의 묘지명: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자손만대에 누(累) 끼치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정성을 다해 한결같이 용감하게 힘써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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