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목숨 바치며 사는 하루
연속적인 비행기 사고 소식을 들은 직후 같은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취소하기 힘든 상황이라 떠나긴 했지만, 꺼려지는 것이 마치 목숨 내걸고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숱하게 다닌 여행이 모두 목숨 걸고 다녔던 것 같았다. 어디 비행기 타고 여행 다닌 것뿐이랴. 지금까지 살아온 하루하루가 어쩌면 목숨 걸고 살아온 삶이나 다름없다. 육십 평생 목숨 걸고 살아온 하루하루인데 지금까지 무사한 것은 거의 기적이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뿐이다. 나와 내 가족은 물론이고, 내 이웃과 삼라만상에게 감사하다.
실제 목숨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위험한 일에 도전하거나, 남은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좋아, 혹은 그것 아니면 곧 죽음이기에 그것에 목숨을 건다.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혹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목숨 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별로 가치 있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절박한 상황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화들짝 놀란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더 인정받으려고, …. 그런 가벼운 일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목숨을 걸다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목숨을 걸고’ 사는 것을 넘어 매일 ‘목숨을 바치며’ 살고 있다. 우리는 각자 하루치의 목숨 값으로 하루 삶을 얻어 살고 있는 셈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되는 삶에서 다행히 이런저런 위험을 피해 무사할지라도, 하루를 살면 그 길이만큼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몇몇 암울한 역사 속 사건들에서 들은 바가 있지만, 계명천지 21세기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 목숨을 바쳐서 하는 일이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고작 그런 일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거야?
요즘 세상에 우리가 무언가 작정하고 목숨을 걸거나 목숨을 바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가만히 있어도 하루하루 줄어드는 우리 삶의 실존은 분명하다. 단순히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죽음과 대면하고 있고, 실제 죽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내가 자발적으로 죽음을 향해 치닫지 않더라도, 우리는 의도치 않게 무언가에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계속 그렇게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