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음'의 두 가지 양상, 고독과 외로움

같은 듯 다름 2

by 환타타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홀로 지내는 것이 마치 공동체에 어울리지 못하는 행태인 듯 낯설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래서 홀로 식당에 가려면 괜히 망설여지고, 차라리 군중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군중 속으로 도피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 시대에는 ‘홀로 있음’ 자체가 부정적 행태였다. 홀로 있음은 사회성 결핍이요, 정서적 병리 증상이었다. 그래서 홀로 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다락방으로 숨어들거나 남들 속에 섞이는 척하기도 했었다.

이제 홀로 지내는 것이 제법 자유로운 시대가 되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홀로 거닐고, 혼자 살고, 혼자 죽어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홀로 있다고 해서 ‘저 사람은 외로운 사람’, 여러 사람 속에 있다고 해서 ‘저 사람은 외롭지 않은 사람’이라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혼자 놀든 함께 놀든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로운 사람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무리 속에 있어도 여전히 외롭고, 어떤 사람은 홀로 다락방에 있으면 외롭다 못해 괴롭기까지 하다.

‘홀로 있음’에 반응하는 두 가지 심리적 양상이 있다. 홀로 있음을 힘들어하는 양상과 홀로 있음을 즐겨하는 양상이다. 학자들은 두 양상을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孤獨; solitude)으로 구분한다. 폴 틸리히는 “외로움은 ‘홀로 있음의 고통’이고, 고독(孤獨)은 ‘홀로 있음의 영광’이다.”라며 시적인 표현을 했다. 그에 따르면 외로움은 극복해야 할 심리적 상태이고 고독은 종종 누려야 할 삶의 양식이다. 바야흐로 ‘홀로 있음’이 대세인 시대에 고독을 누리는 기술을 배울 때다.

“여기저기서 불러 줄 땐 귀찮더니, 이제 아무도 찾지 않으니 서운하네!” 한 친구가 나이 들어 한직으로 물러난 뒤에 한 말이다. 남들이 한창 찾을 땐 조용히 홀로 있고 싶었는데, 물러나 불러 주는 이 하나 없으니 외롭다고 했다. 이 친구의 ‘홀로 있음’을 폴 틸리히의 구분에 대입하면 이렇다. “사람들과 관계 좋을 때 ‘홀로 있고 싶은 로망’이 고독이고, 관계가 끊어져 ‘홀로 있는 우울한 느낌’이 외로움이다.”

친구처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잡은 사람들은 종종 홀로 있기를 그리워한다. 그들의 홀로 있음은 고독의 시간이며, 안식의 시간이며, 충전의 시간이다. 반면 타자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사람은 홀로 있어도 평안하지 못하다. 그들의 홀로 있음은 외로움이며 가시방석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로움에 빠져 우울해하거나 자극적 쾌락에 빠진다. 공자가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고 말한 것은 외로움이 사회적 관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만을 원만히 함으로써 외로움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존재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면서도 동시에 ‘홀로’ 살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고 상호 의존적이지만 굳이 선후를 따지면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이다. 먼저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고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 때,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해질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홀로 있음이 고독이 되고 영광스럽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내 친구의 '없음'과 나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