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 산책길에 만난 '끽다거'

끽다거의 한 의미

by 환타타타

한여름 산책은 해거름이 딱 좋다. 뙤약볕을 피해 조용히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아내와의 해거름 산책은 북한산 계곡을 따라 발길 닿는 데까지 다녀오는 코스다. 계곡은 그늘지고 물은 맑게 흐른다. 발을 담글 수 없는 곳에서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고, 허락된 곳에서는 멈추어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따뜻한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이정표에 좀 더 올라가면 절이 하나 있다고 한다. 처음 듣는 절 이름, 우리는 그곳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절은 등산로를 벗어나 숨찰 만큼 더 걸어가니 모습을 드러낸다. 곧 저녁 예불 시간이 다가오는데 이방인이 들어가도 되는 걸까?, 망설이며 절 문에 들어섰다. 절은 아담하고 정갈했다. 계단과 담장의 돌들은 가지런히 쌓여 있고, 나무와 꽃은 사람 손길이 닿아 더 다정스럽다. 스님 한 분이 장대비에 파인 마당을 고르고 있었다. 쭈뼛대며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스님이 대답했다. “차 한잔하실래요?” 순간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네~, 절 구경 먼저 하고요.” 스님과의 대화는 처음이다. 스님이 먼저 차를 청하는 경우는 더더욱 처음이다.


작은 절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대웅전, 나한전, 칠성각, 범종각, 약사보살 석상, 약수 우물, 해우소, 종무소 모두 요란하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 섬돌에서 보는 해 질 녘 서쪽 산 실루엣이 부드럽다. 약수 물맛이 달다. 공양간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가두어 만든 작은 웅덩이는 탐스럽기까지 하다. 한여름에 수박 몇 덩어리 담가두고 한 사람 냉수욕하면 딱 좋을 만한 크기다. 헌 물은 새 물에 밀려 넘쳐흐른다. 공양간 보살 할머니 한 분이 저녁은 다 지으셨는지 물소리에 멍 때리고 있다.


절 구경을 하면서도 아까 그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차 한잔하실래요?”, 이건 조주 스님의 선문답 아닌가?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하고 가시게!” 나는 이 말을 조주 스님이 제자를 시험하는 말로 알고 있다. “자네는 아직 선을 배울 도량이 못 되네. 그냥 차나 마시고 가시게.” 이때 차를 주는 대로 마시고 가면 탈락이다. 시험에 통과하려면 끽다거를 넘어서야 한다. 조주 스님은 차를 마시는 가운데에도 도는 있다는 뜻을 감추고 '끽다거'로 딴지 걸었다. 이에 걸맞게 대응하려면 의표를 찔러야 한다. 잠자는 가운데서도 선을 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 될 것 같다. “차는 됐고요. 저는 잠이나 자고 갈라요.” 이렇게 응답하면 되려나?


마당으로 내려서니, 아까 그 스님이 다시 한번 청한다. “차 한잔하실래요?” 이번엔 즉답이다. “감사합니다. 폐가 안 된다면요.” “하! 폐는 무슨 폡니까? 편안하게 한잔하고 가세요.” 선문답 하자는 말투가 아니다. 우리 부부를 환대한다는 따뜻한 목소리다. 우리는 스님 방 앞 마루에 걸터앉았다. 스님은 다구를 꺼내와 차를 울어낸다. 보이차였다. 처음 마시면 쿰쿰한 맛이 압도적인데 마실수록 당긴다. “절이 참 예쁘네요. 스님 손길이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아! 여기 주지 스님이 20여 년간 쭉 관리한 덕분이죠.” 스님이 차를 몇 잔 하시더니, 차에 취한 듯 말씀이 많아지신다. 그런데 말씀마다 버릴 게 없다. 되새김질하여 내뱉어 본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됩니다. 아내가 하라 하면 ‘알겠습니다’하고 그냥 하세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라며 따지지 말고, 몸을 움직여 그냥 하십시오. 혹 말이 안 되는 소리로 뭔가를 요구해도 말 되는 소리로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그렇게 하십시오. 따지고 바로잡으려는 순간 생각이 싹트고, 논리가 자라나고, 감정이 솟구치니, 아~! 생각이 많아지면 머리에 피가 쏠리고, 감정이 솟구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그러니 그저 생각을 멈추고 당장 몸을 움직여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정리하십시오. 아~! 거듭 말씀드리니, 생각하지 마시고, 따지지 마십시오. 아내 생각이 당신 생각에 못 미치고, 딸 아들 생각이 당신 생각만 못 하겠습니까? 혹 못 미칠지라도 따져 바로잡는 것보다 ‘알겠어’하고 따르는 게 더 힘 있습니다. 그 힘은 입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기 때문이거든요.”


아내는 연신 “제 남편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네요.”라며 맞장구를 치고, 나는 연신 “알겠습니다.”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스님은 ‘알겠습니다.’라는 다짐 말도 말라한다. “말하지 마시라, 대답하지도 마시라, 침묵하고 그저 몸으로 행하시라. 말, 생각, 감정보다 먼저 행하기를 반복하면 깊은 곳에서 진실한 힘이 솟구치니, 일단 몸으로 보여주시라.”


지금에야 스님이 “차나 한잔하고 가시게” 하며 우리를 불러놓고 ‘끽다거’의 참뜻을 설법하신 걸 알겠다. “나그네 부부님들! 절 구경일랑 집어치우고 찬 한잔 하고 가오. 부처님의 도는 도량에 있지 않다오. 내 거주하는 공간이 참 도량이고, 내 만나는 사람이 곧 부처니,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침묵하고 곧바로 행함이 깨달음이요 도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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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그름 산책길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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