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 길 1코스
뭐든지 첫인상이 중요하다. DMZ 평화의 길 첫인상은 ‘한반도는 분단된 나라’ 임을 각인시키는 길이다. 걷는 내내 한반도의 분단을 생생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시작점이 강화도 ‘평화 전망대’인데 이곳을 들리려면 군인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 정경은 서해안 여느 섬에서 다른 섬을 바라볼 때와 같은 풍광인데, 마음은 착잡하고 씁쓸하다. 걷는 길 초장부터 긴장이 감도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철조망 너머로 강 건너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데 그곳이 북한이라니. 이 길을 걷는 내내 “너희 나라는 분단된 나라야!”라는 환청이 들릴 정도로 철책과 나란히 걷는 길은 계속된다.
지루해질 즈음 ‘고려천도공원’이 나타나 잠시 분단 환청이 잦아든다. 최근에 조성한 고려 시대 역사 유적지이다. 생각해 보면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고구려, 고려 역사 유적지를 본 적이 있었던가? 한강 주변에서 몇 군데 있지만 백제와 신라의 것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개성 공단 시절 잠시 열렸던 개성 관광을 못 가본 게 사뭇 아쉽다. 철조망 북쪽은 북조선이기 전에 우리 옛 조상의 땅이다. 신라의 경주에 가듯, 백제의 공주에 가듯 고려의 개성엘 가고, 고구려의 평양에 가는 날이 내 생애에 가능할까? 다시 환청이 들린다. “넌 너희 옛 조상의 땅을 눈앞에 보고도 못 가는 분단의 땅에 살고 있어”
그런데 인적이 없는 ‘고려천도공원’에 경찰 몇 명이 거닐고 있다. 주차장에 경찰버스 한 대, 순찰차도 한 대 있다. 이 외딴곳에 웬 경찰들일까? 울타리에 쳐 놓은 펼침막을 보니, 이곳이 아마도 대북 전단을 날리는 곳인 듯하다. 평화를 강조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정권이 바뀌어 정부 방침이 바뀌니 대북 전단 살포를 단속하는 경찰로 보인다. 북녘 동포의 자유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과 한반도 평화를 우선시하는 사람들 간의 충돌을 막으려는 경찰의 노력이 가상하다. 이 더운 여름날, 인적 없는 이 철책선 근처 공원에서 순찰 근무하는 경찰을 보고 또 한 번 분단된 조국을 실감한다.
그 긴 철책선 옆길 따라 걷는 동안 군인 한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1코스 중간쯤에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면서 몇 명 만났을 뿐이다. 그 긴 철조망은 밤에만 지키나 보다. 낮에는 멀찌감치서 잘 지키고 있겠지. 군인들이 눈에 덜 띄어 다행히 긴장감은 덜했다. 철조망 너머로 새들이 날아 넘나 든다. 저 철조망 아래로는 두더지들이 넘나들 것이다. 언젠가 사람들도 넘나들 수 있겠지. 먼 훗날 인천 영종도에서 강화도를 거쳐 개성까지 고속도로가 놓인다면 이쯤에서 건너면 좋겠다 싶다. 긴장되면서도 평화로운 길이다. 이 느낌은 태백산맥을 넘어 고성 바다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단조로운, 너무나 단조로운 철책 옆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면 작은 변화라도 반갑다. 인적 없는 작은 마을에 웬 마트가 나타났다. 사람 모이는 곳에 가게가 있거늘.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 연미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월곶돈대 안에 있는 정자다. ‘곶’은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땅을 이르는 말인데, 아마 그 튀어나온 땅 모양이 달처럼 생겨 월곶인가 보다. 지도를 보니 달 모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 구경하는 곳이었나 보다. 돈대는 옛 군사용 초소인데 강화도에 있는 53개 돈대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돈대 너머로 보이는 너른 물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고 또 갈라지며 강화도를 섬으로 만드는 강 같은 바다이다, 북한은 물론 남한의 파주, 김포, 강화를 가르는 너른 물이다. 너르지만 얕아 보여 썰물 때면 바짓가랑이 걷어붙이면 그냥 건너도 될 것 같다.
제1코스의 마지막 관문은 옛 강화대교를 건너는 것이다. 30여 년 전 강화도에 처음 갈 때 시외버스를 타고 건넜던 강화대교는 지금 차량 통행금지다. 다만 도보 여행자와 자전거 여행자만이 건널 수 있다. 그 옆으로 새 강화대교가 새로 생기고, 한참 후에 초지대교가 생겨 지금 강화도로 가는 다리는 총 세 개가 있는 셈이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옛 다리를 건너는 재미는 쏠쏠하다. 텅 빈 다리 위 공간이 주는 호젓함과 난간 너머로 보이는 너른 물의 광활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내가 발견한 건데, 이 다리는 서에서 동으로 미세하게 경사져 있다. 다리 위 바닥에 물을 부으니 강화에서 김포 쪽으로 천천히 흐른다. 자전거를 타고 중력의 힘으로만 대교 끝까지 건널 수 있을 정도다.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김포시 문수산 입구다. 잠시 철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첫 코스가 끝난다.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첫인상이 중요하다. 강화도에서 출발하는 DMZ 제1코스 첫인상은 ‘분단의 실감’이었다. 그러나 그 첫인상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첫인상에 폭삭 속아 쪽박 찬 경우도 있잖는가? 첫인상 보고 버렸다가 놓쳐버린 행운은 또 얼마인가? DMZ 35개 코스는 줄곧 긴장감 맴도는 고요한 곳일 것이나, 또한 코스마다 제각각의 풍광과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풍광과 사연들을 만나러 떠나보자.
연미정
옛 강화대교+ 새 강화대교, 건너편이 강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