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 언감생심!
새벽 배송 플랫폼을 운영하며 떼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요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 기업의 배송 노동자가 연이어 과로사하더니, 이번엔 고객의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까지 일어났는데도 기업주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행동이 빠른 내 아내는 그 업체 회원에서 즉각 탈퇴했다. 우리는 그 기업을 먼저 실컷 욕한 후에 다른 문제는 없나 따져보았다. 이런 문제에 부딪히면 늘 내 아내는 먼저 실천하고 나는 그 근본 문제를 따져본다.
새벽 신문이 배달되듯 주문만 하면 다음날 새벽에 곧바로 배송되는 시스템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큰 인기다. 특히 장 볼 시간도 없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세탁기만큼이나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불의를 보면 대동단결하여 응징하는 시민들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너무나 차분하다. 회원 탈퇴하고 불매하는 시민들 소리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이웃들은 오히려 정부가 그 기업을 벌하여 새벽 배송을 금지한다면 반대 데모라도 할 기세다. 그런 이웃 시민을 나무랄 수도, 잘하고 있다며 내버려 둘 수도 없는 형국이다.
새벽 신문 배달, 우유 배송이 이미 있었고, 새벽시장이 있어온 지도 오래고, 지자체에서는 쓰레기 수거도 새벽에 한다. 따라서 새벽 배송 자체가 옳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침 일찍 필요한 물건이 있고, 그것을 공급해 주면 돈벌이가 되고,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런 물류 배송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기업의 문제는 법적 도덕적 책임만 따져 물으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자꾸 불편하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 밤중에도 일하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을까?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 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면서 그 피로의 원인이 성과사회라는 거대한 구조에 있다고 한다. 그 누구도 노동을 강제하지 않지만, 더 많은 성과를 위해 자발적으로 노동에 뛰어들게 하는, 그래서 사람들을 피곤에 찌들어 번 아웃되게 만드는 사회라는 것이다.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온몸을 불태우며 일하고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거나, 혹 성과를 올려도 그것을 누리며 편히 쉬지도 못하고 더 많은 성과를 위해 또 뛰게 되어 있다. 2300여 년 전의 장자가 “마치 말이 치달리며 멈추지 못하는 것 같으니 슬픈 일이 아닌가!”하고 한탄했던 모습이 오늘날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모습이다. 이런 삶의 모습은 고대 시대부터 줄곧 있어왔던 모습인데, 한병철은 왜 새삼스럽게 이 현상을 주제화했을까?
장자는 그런 인간의 모습이 각 개인의 짧은 소견머리, 좁은 편견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각 개인이 외물에 얽매이지 말 것을 제시한다. 막 달리기를 멈추고, 가만히 앉아 편견을 잊고,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면 무한한 정신적 자유를 얻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참 매력적인 사상이지만, 당장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진단과 처방은 아닌 듯하다. 너무 개인적 차원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한병철은 사회구조적 측면을 짚어준다. 성과사회라는 구조적 틀이 우리로 하여금 막 달리게만 하고 멈추지 못하게 한다. 어느 누구의 강제도 없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자발적으로 달리는 형식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고도로 발전된 (자기) 착취 시스템이 만들어낸 강제적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병철은 더 이상 그 강제적 힘의 구조를 파헤치지 않는다. 피로 사회의 모습만 보여주고, 사회 구조적 해법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른 책에서 그 역시 장자처럼 개인적 차원의 해법, ‘관조(觀照)하는 삶’을 제시할 뿐이다. 그가 제시하는 관조는 장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의 삶이다. 이 해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새벽 배송 문제에 대한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새벽배송 종사자는 더 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막 달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너 왜 그렇게 멈추지도 않고 달리니? 제발 좀 쉬엄쉬엄 살아가게.”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철학자들의 진단과 처방은 공허한 측면이 많다.
누구도 밤잠을 줄여가며 오랫동안 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 생활이라도 유지해야 하는 사람은 잠을 줄여 새벽 배송에 나갈 수밖에 없다. 한낮의 시간제 근로보다 보수가 좋아 보여 감지덕지하며 흔쾌히 달려간다. 배달한 개수에 비례하여 주어지는 보수 시스템 덕에 1초라도 더 빠르게, 1시간이라도 더 길게 일하게 된다. 한 달 두 달 몸무게는 빠지고 피로는 쌓인다.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숨은 가빠온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쓰러진다. 이런 사람에게 “너 왜 그렇게 미련하니? 그렇게 힘들면 좀 쉬었다 하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멈춤, 관조, 무위 같은 처방은 메슬로의 욕구 사다리 4단 이상에게나 내려줄 일이다.
새벽 배송 자체를 못하게 할 수 없다. 수요처가 있고, 돈벌이가 있다면 시장은 형성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피로 해복 시간은 주어져야 한다. 밤에는 더 짧게 일하게 하고 더 긴 회복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일해도 최소 생활이 유지되는 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법제화하여 강제해야 한다. 일요일에 가게가 문 닫듯, 저녁이면 회사의 일도 멈추듯, 한밤에는 모든 경제활동이 멈추고도 모든 사람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