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많이 떠나왔고 또 떠날 나를 위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나는 고향 김해를 떠나 부산으로, 서울로, 그리고 이제는 바다 건너 멀리 캐나다로 간다. 내 인생을 톺아보면 그리 도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굴러가는 대로 주변의 기대에 맞춰서 살아왔다. 학생일 때는 적당히 공부했고, 부산으로 넘어가 대학생일 때는 적당히 학점 챙기며 게임하며 지냈다. 운이 좋게도 개발자 붐이 일어났을 무렵 컴공과를 나왔기에 취업도 쉬웠다. 부산의 직원 100명 남짓의 중소기업이었지만 굳이 취준 해서까지 대기업을 노릴 생각은 1도 없었다. 해외대상 기업인지라 베트남 장기출장을 대기했지만 그때는 2021년, 코로나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출장 당일 취소까지 총 4번의 연기를 통보받고 퇴사를 결심하고 이직시장에 내 몸을 던졌다.
그때 당시 두 가지의 길이 있었다. 부산 모교 교수님이 하는 연봉 4000의 연구실 그리고 서울 스타트업 3500 연봉의 AI 연구원.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좋은 것은 당연하게도 1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2안, 서울을 택했다. 개발자니까 언젠가 서울로 가겠지~라는 생각이 있었고 기회가 있으니... 에라 모르겠다! 크게 고민 없이 비합리적인 서울을 택했다. 그렇게 약 2년 동안 미주로 해외출장도 몇 번 가게 되면서 해외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어디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나는 늘 고민하고 결정하지만 남들 눈에는 마치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처럼 갑자기 혼자서 결정 내리고 통보받는 식이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나는 나고 남은 남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잘나서라기보다는 타인의 삶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지 언정 나의 어떠한 결정에 대한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나는 이렇게 살게.
이렇게 된 근거를 타고 내려가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무엇보다 나의 취향의 사람을 주변에 두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책을 좋아했었다. 남중, 남고는 정글과도 같아서 육체적이고 활동적인 것이 친구들 사이에 중요하다. 조용하고 책과 컴퓨터를 좋아하는 나는 상극인 환경이었다. 성격도 너무 소심해서 친구를 잘 사귀지도 못했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크게 걱정하시기도 했다.
가정환경도 비슷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조용하고 책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성격도 체형도 반대인 형은 친구도 많고 학교생활을 잘하는 반면, 나는 학교는 나가는데 사교적이지 않으니 문제가 있나 생각도 하셨다. 그런 기운을 느꼈는지 집에서도 내가 크게 서지 않았다. 밖에서도 집에서도 나보다는 남의 기류에 맞추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늘 그게 고민이었고 혼자서 생각을 정말 많이 해왔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니 놓아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이 하나씩 알게 되더라.
이번에 떠나면서 캐나다로 떠나길 결정하면서 붙잡는 것들이 몇 있었다. 애석하게도 가족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만난 독서모임, 그 안의 사람들과 서울에서의 생활이었다. 나에게 이런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서울의 삶에서 50% 이상은 독서모임이 채워주었다. 우스갯소리로 모임없었으면 나는 죽었다고 말할 정도로 모임을 좋아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받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여기서만큼은 자유롭게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그걸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쓰다보니 이 말은 꼭 해야 되겠다. 독서가 우월하고 막 다른 것보다 좋은 행위라 생각지 않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눈치보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것은 십년지기 친구들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나 최근에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읽었어"라고 했을 때 받아주는 사람들을 원했다. 그것을 채워준 건 독서모임이 유일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꿈같이 지나갔다. 힘든 일보다는 행복한 일이 더 많은 곳이었다. 내가 태어날 곳은 김해였을까, 서울일까, 저기 물건너 캐나다일까. 우연히 다시 집어든 달과6펜스에서 저 문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가족이 1순위가 아닌 내가 잘못되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공간을 주었다.
누군가 고향에 대해 묻거든 '맘이 편한 곳이 고향이라면 서울이었다'라고 답할 것이다. 캐나다는 고향이 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일단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