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기준

by 이환

대학생 때 잠깐 영어회화동호회를 잠깐 다닌 적이 있었다. 짧은 영어로 어찌저찌 말하다가 턱 막힌 단어가 있었다. '형'이다. 가족관계의 친형이 아니라 몇 살 정도 많은 친한 형을 지칭하려던 차였다. 기계적 영어사고를 가진 나는 brother 외에 떠오르는 게 없었고 우물쭈물하며 한국말로 말하니 guy라고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이제는 답을 찾았다. 그냥 friend라고 하면 되었다는 것을.


한국문화에서 친구는 모호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을 가지는 단어다. 한살이라도 위면 형, 누나 아래면 동생이다. 여기서 만난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보다 서로의 호칭이 정해진다. 이름이 아닌, '친구'가 아닌 다른 호칭이 필요하다. 형, 누나, 언니, 삼촌, 아저씨 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를 가면 나이를 묻고 농담으로 언니, 형이라고 부르라 한다. 또 이어서 생각해보면 한국어 중 유명한 단어는 오빠다. 대상이 남녀불문하고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오빠라고 웃으며 부른다.


반면 타국가에서 온 이들은 달랐다. 다들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기본이다. 하물며 학교내에서 선생님을 지칭할 때조차 teacher가 아닌 그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로 치면 OO씨처럼 Mr.XXX로. 애초에 나이에 따른 호칭자체가 없는 것같기도 하다. 클래스 내 친구들끼리도 나이를 잘 모를뿐더러 나이가 많든적든 똑같은 레벨에서 대화를 한다. 문화가 비슷한 듯한 일본도 그 점에서는 차이가 있어보인다. 모든 일본어를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내며 깨달은 친구의 의미는굉장히 열린 개념이다. 나이를 떠나 그 관계가 중심이 된다.

저 친구랑 너랑 동갑이네? 너희 둘이 친구야!

음... 좋다. 이런 것도 좋지만 뭔가 어색하다. 하하 안녕, 나는 XXX이야. 나이가 같으면 친구, 그리고 반말하기. 아무런 인연이 아니던 사람을 억지로 연결하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친구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우린 거의 친구지, 너네가 어떻게 친구야 형이고 동생이지

심정적으로 친구일지라도 나이의 기준이 못미치기에 친구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친구란 관계에 너무 큰 의미를 담는다. 잠깐 친하게 지낸 관계는 친구인가 지인인가. 서로 존대말을 하는 관계는 친구인가. 직장동료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다른 이에게 전달할 때 '친구'라는 단어를 붙일 때는 대학교, 고등학교, 혹은 몇년지기 등의 접두어가 붙는다. "에이 대학교 때 친구가 친구야?" 이런 말도 종종 듣는다. 그럼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대학교동기? 어쩌면 그 관계를 정하는 것이 불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친구는 이정도는 되야해라는 기준이 존재하고 그 안에 넣고 싶지 않은 마음같은 것말이다.


나에게 누군가 거기서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라고 물으면 같이 일하는 일본인 셰프이다. 스시바에서 일하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일이나 여기서의 생활도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 나이가 내 아버지보다 많다. 그럼 무슨 친구냐!라고 묻는다면 같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게 친구가 아닌가. 오히려 칼리지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감정적 교류가 더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 분이 어떤지는 별개로 적어도 나에게는 재밌는 아저씨, 형, 친구이다.


돌아가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인간관계들도 많이 떠오른다. 직장인들이 모인 모임에서 나의 포지션은 대부분 늘 막내였다. 귀여운 막내는 아니고 나이로 막내였다. 그렇게 내 주변에는 대부분 형, 누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부르진 않았고 거의 XX님, XX씨로 본명 혹은 닉네임을 불렀다. 그 때는 뭔가 아래에 있다기보다 동등하다는 느낌을 더 받았다. 어쩌면 나와 그들도 친구와 모임원, 혹은 형누나동생 그 어디 즈음에 있었던 것같다. 지금의 나는 그들을 지칭할 때 적어도 영어로는 friend라고 부른다. 그 말이 아니면 bookclub member라고 불러야 하려나.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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