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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Mar 12. 2021

삶의 디테일을 기억한다는 것


난 디테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동안 그 친구는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한다. 난 그저 서울에서 부산행 버스를 타고 부산에 갔다. 정도로 내 기억은 끝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휴게소에서 뭘 먹었고 버스터미널에서 어떤 이상한 사람이 있었고 가는 길에 어떤 농담을 하면서 왔는지 기억의 스펙트럼이 매우 잘게 쪼개져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때의 기억을 이야기를 할 때 그 친구는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고 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하는 사람 보다 내가 느끼지 못한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더 부럽다. 세상이 자신에게 전달하는 걸 나처럼 무뚝뚝하게 넘기는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예민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건 부러운 능력이다. 나에게 부산행에 대한 기억은 그저 버스릍 타고 갔다 정도지만 그 친구는 그 사이에 많은 감각들을 받아들여 스토리로 만들었다. 똑같은 시간을 함께 버스를 타고 갔지만 얼마나 그 시간을 풍성하게 느꼈지는 나와 확실히 다르다. 이게 쌓이다 보면 삶의 풍성도는 그 친구와 비교했을 때 더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


지금 내 와이프는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 세상의 예쁨을 잘 발견해서 나에게 보여준다. 무심히 길을 가던 나에게 갑자기 "저 꽃 봐바 예쁘지" 라고 말하며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보면 정말로 예뻤다. 그러면서 난 왜 저걸 보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나에게 와이프는 세상의 예쁨을 보여주니 조금이나마 내 삶의 풍성함이 더 커지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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