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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10. 2021

취향의 고급과 저급의 기준

친구가 쿠팡 음식 배달을 부업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나름 느끼는 바가 있어 보였다. '이런 집에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집에도 배달을 가고 '이런 집에 사람이 살려면 얼마를 벌어야 할까' 싶은 집에도 배달을 갔다고 한다. 한 가지 재밌었던 건 쓰러져 가는 집이나 궁궐 같은 집에 배달을 가나 시켜 먹는 거는 버거킹이었다는 거다. 돈이 많으나 적으나 사람 사는 건 똑같다고 하는 데 음식 배달을 하면서 그걸 느꼈다고 했다. 


부는 양극화됐지만 음식 취향은 예나 지금이나 고만고만하다. 요즘 시대에 취향의 고급과 저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을 먹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먹는 지다. 똑같은 라면을 먹어도 누구는 양은 냄비로 먹고 누구는 한 개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정갈한 그릇에 옮겨 담아 먹는다. 월 1억 버는 사람이나 100만 원 버는 사람이나 700원짜리 라면을 먹는 거는 같으나 어떻게 먹는지는 확연한 차이다. 


난 '무엇' 보다 '어떻게'에 방점이 찍힌 트렌드가 비단 음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요즘 시대의 전반에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다품종 대량 생산의 시대에 프랜차이즈는 넘쳐나고 영화, 음악, 책, 그림 등 손쉽게 맛보고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는 똑같은 영화도 자신의 방한칸을 빵빵한 홈씨어터로 만들어 감상하고 음악도 최고급 오디오 장비를 들여 듣는다. 배우 김혜수는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는 외국책을 읽기 위해서 번역가를 따로 고용해서 읽는다고 하니 말 다했다.


15만 원짜리 중저가 가방을 들어도 멋스러운 사람이 있고 500만 원짜리 샤넬 백을 들어도 천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무엇을 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착용했는지, 어떤 애티튜드로 물건을 대하는지에 따라 취향의 고급과 저급이 결정된다. 과거에는 그저 비싼 브랜드가 취향을 드러냈다면 요즘처럼 물질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그 물질을 어떻게 쓰는지가 훨씬 중요한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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