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로케 Jun 15. 2021

그리운 못생김

사진 찍을 때 보정 필터를 잘 안쓰는 편이다. 3년,5년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사진을 봤을 때 그때의 나란 녀셕이 어땠는지 체감하고 싶어서다. 필터를 쓰면 세월의 변화가 사진 속에 녹아있지 않다. 30살에 보정 필터로 찍은 사진을 보면 25살적 나 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주름은 사라지고 피부는 저절로 화이트닝 되고 눈은 또렷해지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사진을 보며 30살의 나를 추억하고 회상하고 싶어도 사진 속 내 모습이 낮설어 몰입이 안된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찍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와이프는 필터 없는 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이 모습은 내가 아냐."라고 말하며 필터 있는 자기 카메라로 다시 찍는다. 그럼 나는 "이게 정말 너라고 생각해?" 라고 하면 아무말 하지 못한다. 와이프와 사진을 찍을 때도 5년, 10년이 지나 다시 그 사진을 봤을 때 '맞어 우리 그때 이랬었지.' 라고 말하며 추억에 젖어들고 싶지만 얼굴에 필터 범벅된 사진을 보면 그러기도 쉽지 않을 거 같다. 그래서 난 필터 없이 찍자고 하지만 와이프는 꼭 필터 있는 카메라로 다시 찍는 편이다.


그때의 내가 비록 필터로 보정했지만 예쁘고 멋져 보였으면 하는지 아니면 주름범벅이고 꽤나 못생겼지만 그냥 그때의 나를 사진에 남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10년 전 필터 없이 찍은 못생긴 사진을 다시 봤을 때 과연 '저때 나는 참 더럽게 못생겼군' 이라고 생각할까?아니면 그래도 지금 보다 파릇했던 10년 전을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바라볼까?난 후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저10년 전 못생김 조차 그립다. 사진 속 못생김은 한 순간이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하는 언어 사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