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생각법 13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몰랐다. 영화를 보면 영화 글을 쓰고 싶고 전시를 보면 전시 글을 쓰고 싶고 여행을 가면 여행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글을 쓴다면 콘셉트가 무너질 거 같았다. 한 가지 주제로만 글을 쓴다면 내가 과연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문제였다. 이런저런 고민을 친구에게 말하니 그 친구는 이런 대답을 줬다. "그냥 아무 카테고리 없이 네가 쓰고 싶은 글을 쭉 쓰고 그게 10개, 100개, 1,000개가 모이면 자연스럽게 카테고리가 분리되는 데 그 고민은 그때 생각해."
이 조언으로 난 깨달았다. 그건 바로 양은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일정한 양이 쌓이면 방향이 보인다. 우리는 흔히 이걸 데이터라고 한다. 데이터를 쌓으려면 써야 한다. 쓰지 않으면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다. 데이터가 쌓이지 않으면 방향 결정의 판단 근거가 없다. 우리는 하이퀄리티니 뭐니 하면서 양을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양은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하이퀄리티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일정한 양이 수반 되어야 한다.
나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글의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때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이 하나, 둘씩 쌓이자 전반적인 글의 경향이 나타났고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각 잡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 깊이 써야지’라는 생각하면 쉽게 지쳐 버린다. 무엇보다 글쓰기의 재미를 잃는다.
하지만 혼자 글을 쓰다 보면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과연 나 따위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도 있는데......’라는 생각 말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고민을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글로 쓰고 공유하는 것에 어색함을 느낀다. 나는 아직 이 분야에 대해서 깊이 모르는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글쓰기를 주저한다.
전문성은 상대적이다. 나도 유치원생 앞에서는 수학 전문가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전문성의 신화 앞에서 좌절한다. '내 따위가 무슨', '쥐뿔도 모르는 내가 뭘 쓴다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난 중학교 때 수학 점수가 60점이 될까 말까였지만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의 산수를 알려줬다. 내가 알려주고 산수 점수는 올랐다.
좋은 대학의 박사학위나 자격증이 있어야지 전문성을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자기가 하나라도 더 알고 있으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 줄 수 있다. 문제는 전문성이 아니라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다. 머리에는 온갖 지식이 있지만 눈높이에 맞는 설명 능력이 있는 전문가는 소수다.
그래서 자기가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글을 쓰고 공유하는 데 주저할 필요 없다. 지식이라는 것이 알면 알수록 미궁이어서 글을 쓰기가 겸손해진다. 하지만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지식은 더 견고해진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분야는 백지상태의 무지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은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 ‘나’에 대한 전문가는 ‘나’ 자신이다. 자기 삶과 경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좋은 글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작가에게 좋은 삶이란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삶의 전환점은 새로운 역할에서 시작한다. 남자친구에서 남편으로 남편에서 아버지로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삶의 패러다임은 바뀐다. 고여 있지 않고 늘 깨어있으며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면 스스로 역할을 쟁취해야 한다. 역할은 누군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게 아니다. 그건 나를 위한 역할이 아니다. 역할을 부여한 사람을 위한 역할일 뿐이다. 바로 이 역할을 통해서 삶의 관점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아는 형은 원래 카페 매니저 일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 형이 구상한 사업은 러닝 커뮤니티다. 워낙 뛰는 것을 좋아하고 외국에 나가서까지 마라톤을 하고 오는 형이었기 때문에 러닝에 대한 정보와 경험치가 많았다. 그렇게 그 형은 자신만의 러닝 커뮤니티를 키웠고 어느새 자신의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을 벌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타인이 나에게 부여한 역할을 파괴해야 한다. 자기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며 사는 게 인생의 재미다. 아침에 자기 집 앞을 쓸고 치우면 그때부터 환경미화원이 되고 글을 써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작가가 된다. 출퇴근길에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사진가가 된다. 회사에서 맛있게 커피를 내려 동료에게 건네주면 바리스타가 된다. 누가 나에게 역할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 역할은 내가 만든다. 토니 스타크는 세계 최고의 무기 회사 CEO였지만 그걸 버리고 아이언맨이 됐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영웅이 되라고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소명 의식을 만들어 그걸 수행했다. 그리고 영웅이 됐다.
자신의 역할 스펙트럼 안에 있는 역할 감각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의 역할을 몇 가지로 단출하게 생각한다. 회사의 직원이자 아내의 남편, 부모님의 자식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 정도다. 삶 속에서 우리의 역할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단지 누군가 그 역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할의 스펙트럼에서 지운다. 좋은 배우는 시나리오에 없는 역할을 스스로 만든다고 했다. 시나리오가 미처 묘사하지 않는 부분을 메우면서 분량을 늘리고 역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역할 감각을 인식하고 있어야 그에 대응하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거기서 삶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거기서 글이 나온다.
어차피 우리는 살아간다. 이왕 살아가는 것이라면 내 삶이 글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그렇게 되면 삶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진다. 결국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나만의 글이 되고 기록으로 남게 된다면 보다 주체적이고 건강하게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삶이 글이 된다면 인생은 더 재미있어진다. 당신이 사는 방식이 곧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