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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문단은 무엇일까?

한 문단 쓰기 _ 6

by 고로케

좋은 문단은 무엇일까? 우리가 좋은 문단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침반 삼을 수 있다. 문단의 방향이 어긋났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문단의 개념을 떠올리면서 수정해보자.


앞에서 문단을 전개하는 법에서 소개한 4가지 구조에는 두 가지 지향점이 있다. 첫째는 문단의 단일성이다. 각 문단의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그것을 어떻게 지원하고 어떤 근거와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지가 나타나 있다. 쉽게 말해, 한 문단에는 한 가지 메인 아이디어만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다. 문단을 구성하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가 중요하다. 문장의 흐름이 뚝뚝 끊기거나 생각이 분절되면 독자의 몰입을 해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좋은 문단이란 단일한 메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전개가 이뤄지는 문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쁜 문단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나쁜 문단은 비일관성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문단이다. 이런 문단은 하나의 생각을 매듭짓지 못하고 다른 생각으로 전이하면서 일관성 없이 표류한다. 이렇게 내용 전개가 일관적이지 못하니 그 뒤에 이어지는 근거와 예도 무엇을 뒷받침하는지 몰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비 일관된 문단은 핵심 아이디어를 모호하게 한다. 다음 예문을 살펴보자.


미국의 찰스 컬런은 간호사로 일하면서 수십 명을 살해했다.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과연 선의로 한 악행은 선일까? 악일까?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을 했으나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 행위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신의 명령을 거스르는 행위기도 하다. 종교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는가.


혹시 이 문단을 읽고 무엇이 메인 아이디어인지 포착할 수 있겠는가? 이 문단은 연쇄 살인 사건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선과 악의 물음으로 이어지고 다시 안락사 그리고 종교 논쟁까지 이어졌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핵심적인 생각이 없이 그저 방랑하는 비 일관된 문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문단은 독자에게 답답한 물음표만 줄 뿐이다.


나쁜 문단의 두 번째 조건은 중복성이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뒤에서 다시 언급하는 문단이다. 이런 식의 문단 전개는 글의 경제성 측면에서 위배 된다. 또한 중복진술은 핵심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의 뾰족함을 죽여 버린다. 다음 문단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메쉬 재질의 드럼패드는 고무형 드럼패드에 비해 소음이 적어서 아파트에서도 쉽게 드럼 연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베이스 드럼패드는 소음이 적을지 몰라도 진동이 울리기 때문에 아래층으로부터 층간소음 항의를 받을 수 있다. 메쉬 재질의 드럼패드는 적은 소음 때문에 인기가 있어 소음에 민감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연습할 수 있다. 적은 소음을 원한다면 메쉬 드럼패드가 제격이다.


이 짧은 문단에 메쉬 드럼패드가 소음이 적다는 내용이 몇 번이나 있을까? 4번이다. 메쉬 드럼패드가 소음이 적음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메인 아이디어를 강조하고 싶다면 왜 소음이 적은지에 대한 예나 과학적 근거를 들었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문장을 중복하여 사용하다 보니 메인 아이디어가 죽어버린 경우다.


좋은 문단과 나쁜 문단은 사실 한 끗 차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좋은 문단도 나쁜 문단으로 한 끗 차이로 바뀔 수 있다. 문단을 전개할 때는 좋은 문단의 조건인 단일성과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을 염두 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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